헌법재판소, 국사교과서 국정화 우려한 이유
국정교과서 체제, 학생 사고력 획일화·정형화 우려…“국사는 다양한 견해 소개가 바람직”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이 활성화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저해되거나 둔화될 우려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교육계 쟁점으로 떠오른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견해를 내놓은 일이 있다. 23년 전인 1992년 헌법소원 사건인데 당시 헌재의 판단 논리에는 교과서 국정제도에 대한 시각과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헌재는 국정 교과서 체제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국사 교과서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는 정부가 최근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12일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했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017년부터 국가가 발행하는 국정으로 바뀌게 됐다.
헌재가 1992년 헌법소원 사건에서 국정 교과서 체제에 우려를 나타낸 이유는 무엇일까. 헌재는 국정 교과서 체제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에 주목했다.
헌재는 “교과서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면 그러한 교과서를 통해 양성되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정형화하기 쉽고 따라서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의 개발을 억제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헌재는 “교과서 국정제도는 국가가 교과서를 독점하는 체제이니 만큼 검·인정 제도보다도 훨씬 교과서 발행 방법이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헌재는 헌법 제31조 4항을 거론하며 국정 교과서 제도는 헌법 규정과 모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헌재는 “국정 교과서 제도는 교육부에 의해 교과서 편찬이 주도될 뿐만 아니라 그 교과서만이 교재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행정 관료에 의해 교과내용 내지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교과서 발행에 대한 국가의 관여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국정 교과서 제도 자체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견해를 내놓았다.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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