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 롯데 이대은, 신일고 선후배-팔꿈치 수술-日 야구한류 등 닮은꼴..."MLB행 꿈 접지 않았다"

요미우리 시절 조성민(왼쪽)과 지바 롯데의 이대은(오른쪽).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요미우리 시절 조성민(왼쪽)과 지바 롯데의 이대은(오른쪽).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정동훈 인턴기자] 이대은(26ㆍ지바 롯데 마린스)이 일본 무대를 달구고 있다. 지난해까지 미국 트리플 A 시카고 컵스에서 '코리안드림'의 꿈을 키우던 이대은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와 계약했다. 그리고 생애 첫 1군 무대에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26이닝 무실점, 시즌 성적은 9승2패(다승 2위)다. 평균자책점 3.29는 리그 12위 기록이다. 일본 진출 첫 해 만에 이대은은 깨지지 않는 지바의 성벽이 됐다.


야구 실력에 꽃미남 외모까지 겸비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로 여성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바 롯데 구단은 "이대은이 젊은 독신남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 것"이라며 '이대은 덮밥'을 출시했고 이달 내로 '이대은 티셔츠', '이대은 우동'까지 선보일 계획이다. 이대은은 이대호(33ㆍ소프트뱅크 호크스), 오승환(33ㆍ한신 타이거즈)과 더불어 야구 한류(韓流)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대은의 활약은 기시감을 준다. 고 조성민. 한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둥투수였다. 이대은은 조성민의 신일고등학교 후배라는 인연이 있다. 이대은은 전성기의 조성민처럼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주무기로 던진다. 이대은의 키(190㎝)는 조성민(194㎝)보다 약간 작지만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선량한 미소까지 닮은꼴이다.


조성민은 1996년 요미우리의 1호 한국인 투수가 됐다. 이후 정민태(2001~2002년), 정민철(2000~2001년)등이 잠시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지만 크게 활약하지는 못했다. 1998년은 조성민의 전성기였다. 전반기에만 일곱 번 이겼고(다승 1위) 평균자책점 2.75도 리그 1위였다. 그런데 그해 올스타전에서 사단이 났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 최고의 시즌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조성민은 재활 훈련을 하며 시즌을 마쳤다. 다친 뒤 8개월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팔꿈치 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은 복귀성공률이 높고 수술 후 구위가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조성민을 최고의 자리에 세웠던 승부욕이 발목을 잡았다. 재활을 제대로 마치지 않고 7개월 만에 복귀를 강행했다. 이후 구위가 저하됐고 부진을 거듭하다 2002년 자진 퇴단했다. 일본 프로 야구 통산 11승 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의 기록을 남긴 채.

AD

이대은도 똑같은 곳을 다쳤다. 신일고 재학시절인 2007년 6월 시카고 컵스와 계약, 미국에 진출한 이듬해였다. 좌절은 없었다. 근 1년간의 재활을 통해 마운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싱글A(2007년), 더블A(2012년), 트리플A(2014년)까지 차근차근 딛고 올라섰다.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135경기를 뛰며 40승 37패에 방어율 4.08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대은은 메이저리그의 문턱에서 걸음을 돌렸다.


스카우터까지 파견하며 계약을 원한 마린스의 적극적인 모습에 이대은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아직 태평양 너머에 있다. 메이저리그를 노크할 때 이대은은 "아시아 투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깨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자신도 있었다. 이대은은 "일본에서 성공한 뒤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동훈 인턴기자 hooney53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