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訟事) 불만' 보복범죄, 법조인 무방비 노출
청사 밖 경호조치 사실상 전무, 변호인은 더욱 열악…'전관예우' 논란, 사법부 불신도 요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지난해 8월 최모(59)씨는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변호사 사무실에 석유통을 가지고 들어가 불을 붙였다. 불은 소방당국의 신속한 대처로 10여분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사무실 대부분은 이미 타버린 뒤였다. 최씨는 민사소송을 맡겼다가 결과적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잃자 변호사가 상대방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송사(訟事)' 처리를 담당하는 법조인들이 보복범죄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17일 0시께 발생한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 피습 사건은 법조계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까지 지내며 조폭 잡는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박영수 변호사는 소송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모(63)씨로부터 공업용 커터 칼에 의한 공격을 당했다.
법조인들이 보복범죄 표적이 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건이 있다. 지난해 8월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을 일으킨 최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보복범죄는 엄중한 처벌 대상이지만, 행위 주체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1997년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은 집무실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흉기에 찔리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법조인 대상 보복범죄가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특별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판사나 검사의 경우 청사 내 경호조치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자택 등 청사 밖은 사실상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별한 사유가 생길 때는 보호조치를 취하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면서 "법관의 자택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경우 영화에서처럼 범죄자들이 검사를 보복 공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검찰 밖에 나섰을 때 보복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위험 징후가 발생하면 조치를 취하지만 일상적으로 경호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폭력범죄의 양형기준을 보면 보복범죄는 가중처벌하게 돼 있다. 판사와 검사가 보복범죄 대상이 됐다고 해서 일반인보다 더 가중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변호사들은 판사나 검사에 비해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평소 업무 자체가 첨예한 이해관계를 처리하는 역할인데 사건처리 결과가 언제나 흡족한 방향으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경우 변호사 책임으로 몰아가고 폭력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보복범죄의 또 다른 배경은 사법 불신에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전관예우' 문제 때문에 왜곡된 결과가 나온다고 단정하며 폭력행사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결국 전관예우 근절 등 사법 불신 해소가 해법이 되겠지만, 보복범죄에 대한 엄중한 대처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사건의 당사자가 상대방 변호인의 생명과 신체를 공격하는 사적 보복행위는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가해자를 엄중 처벌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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