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박정범 감독의 4년 만의 신작 '산다'
제67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년비평가상' 등 해외영화제에서 먼저 호평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산다'는 장편 '무산일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한 박정범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전작에서 탈북자의 현실에 대해 묵직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박 감독은 이번에는 자본주의 최하층 노동자의 생존기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16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또는 불편하게 그려진다.
강원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 '정철'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누나 '수연'과 어린 조카를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의 곁에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친구 '명훈'이 항상 함께 있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마저 '정철'에게는 쉽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의 임금은 밀려 있고, 동료들은 임금을 들고 도망간 팀장과 한 패라며 그를 의심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수연'은 번번이 일터에서 사고를 치기 일쑤다.
'왜 난 하나도 가질 수 없는가' 주인공 '정철'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한 시도 멈추지 않는다. 한겨울의 강원도 눈밭을 헤쳐 나가면서 나무를 베고, 돌을 굴리고, 닭을 잡고, 된장을 만들고, 사람을 찾는 등 부단하게 움직인다. '정철' 역은 박정범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 1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CGV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정철'에 대해 "계속해서 나무를 베고, 집을 고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자신의 인력에 의지하며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은 이유에 대해서는 "연기하고 촬영하는 일이 농사짓는 일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느껴졌다. 이번 영화는 특별한 기억에 의해 시나리오를 쓰게 됐고, 그러다 보니 그 느낌으로 직접 연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나 '수연' 역을 맡은 이승연은 "시나리오 상 주인공은 지독하게 힘들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박 감독이 다른 배우들에게 이 역할을 요구하기가 미안하다고 하더라. (박 감독이) 맞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맞았고, 친구들에게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에서는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2시간45분이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4시간30분에서 5시간짜리 영화가 됐을 것이라고 한다. 박 감독은 "일부에서는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데 왜 지루하게 길게 보여줬냐는 말도 하는데, 산다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며 "한 번쯤은 이렇게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꼭 4시간30분짜리 버전으로 상영을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나리오 상 아깝게 편집된 부분이 있지만 끝내 '정철'이 희망을 보는 결말은 같다.
'산다'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정철'과 그의 가족들, 동료들이 머물게 되는 된장 공장이다. 이곳은 실제 박정범 감독의 부모가 운영하는 곳으로, 아버지 박영덕 씨가 된장공장 사장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갑을 간의 갈등, 더 나아가 노동자들끼리의 불화 등이 이곳에서 발생한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자본주의 계급에서 자본가들이 어떤 일을 하는 데 희생을 하는 것은 항상 노동자들인데, 정작 노동자들은 이것을 모른다. 이익은 자본가가 가져가고, 손해는 노동자의 몫이 되는 현실을 다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정철'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남의 행복을 빼앗는 행위는 결국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 결국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영화 '산다'는 21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해외에서 먼저 화제가 된 상태다. 지난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2014' 프로젝트에서 첫 공개된 후 토론토 국제영화제,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뮌헨 국제영화제, 홍콩 국제영화제 등 20여개 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또 제67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년비평가상', 제25회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 제29회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오브라씨네배급상' 등을 수상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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