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등으로 경기회복을 꾀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의미로 올해에도 한일간 물가상승률 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일본에 못 미친 것은 오일쇼크가 불어 닥친 1973년 이래 41년 만에 처음이다. 그해 한국과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각각 3.2%와 11.6%였다.
당시 중동전쟁이 일어나 석유 가격이 수직 상승하자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는데, 일본에 비해 공업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돼 있던 한국은 유가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덜 받았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1974년 일본보다 1.1%포인트 높았던 것을 시작으로 1980년에는 격차가 20.9%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지기 시작한 1992년부터 2013년까지 22년간 마이너스 또는 0∼1%대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한국의 물가는 최고 7.5%(1998년)까지 올랐다.
지난해 일본은 소비세 인상과 엔화약세(엔저)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상승률이 1991년(3.3%) 이래 최고인 2.7%를 기록했지만, 한국은 농축수산물, 석유류 제품 가격 하락으로 1.3%에 그쳤다.
특히 지난 1월에도 일본은 2.4% 성장했지만 한국은 0.8% 증가하는데 그쳤으며, 지난달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0.5%까지 낮아져 저성장·저물가 구조가 고착화해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률 하락 속도가 거품경제가 가라앉던 1990년대 일본보다 빠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1992∼1993년 2년 연속으로 1%대를 기록한 뒤 1994년 0%대로 떨어지고 1995년 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최근 한국의 물가상승률 하락 속도는 이보다 더 빨라 디플레이션이 조만간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주요 7개국(G7) 평균치나 OECD 평균에도 못 미쳤다.
G7의 지난해 평균 물가상승률은 1.6%로 한국보다 0.3%포인트 높다. G7 평균보다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낮아진 것은 8년 만에 처음이다. OECD 34개국 평균도 1.7%로 한국보다 높았다.
삼성증권 등 국내외 금융사들은 이런 추세가 1년 내내 이어져 올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양적완화(QE) 등 획기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에 접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