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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주택 사기부터 생계형 자살까지…일그러진 중개업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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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보증금 및 배당이의 소송 1만2245…대부분 '깡통주택 사기'
부동산 침체와 과당경쟁으로 폐업 혹은 자살 중개업자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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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1. 지난 7월 인천 중구 신흥동 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분신해 사망했다. 이날 오전은 그가 세들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부동산 인도 명령이 내려져 강제집행이 이뤄진 때다. 사망한 그를 두고 "'깡통주택 사기'에 걸려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2억원 정도의 근저당이 설정된 집의 전세계약을 맺은 시기가 경매 개시 두 달 전이었고 전세금은 2500만원에 불과했다. 석연찮은 전세금 외에 선순위 근저당권자인 새마을금고가 임대차계약이 무효라며 세입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보증금 변제가 불가능한 처지가 된 것은 결정적이다.

#2. 서울 은평구에 사는 최모 씨는 아직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고 누구보다 성실했던 남편 박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2년 전 겨울.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한 후 빌라나 오피스텔 매매를 주로 하던 박 씨는 한때 월 수천만원의 고수입을 자랑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빌린 돈의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 몰렸다. 한 달에 내야 하는 이자만 800만원에 달해 박 씨가 관리하던 원룸의 보증금과 월세를 빼돌리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다 결국 버티지 못한 것이다. 최 씨는 "정직하게 수수료 받고 계약한 후에도 뒷처리를 다 해줄 정도로 열심히 일한 남편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1만7294명과 1만2245건. 지난해 폐업한 개업공인중개사 수와 임대차 보증금 및 배당이의 관련 소송건수다. 거래 감소 등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중개업자가 많은 동시에 남의 쌈짓돈으로 잇속을 채우며 살아가는 중개업자도 적지 않은 셈이다. 부동산과 관련된 배당이의 소송은 보통 소액임차인이 집주인과 악덕 중개업소에 의해 근저당이나 융자가 있는 주택에 임대차계약을 맺었다가 휘말려 발생하게 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중개보수(중개수수료) 인하방침에 공인중개사협회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고 나서며 중개업계의 현실이 새삼 관심을 모은다. 협회는 "현행 중개보수 요율도 저평가돼 있다"며 "부동산시장 거래 정상화와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중개보수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깡통주택 사기' 사례에서 보듯 정상적인 중개행위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기획사기' 형태의 피해사례를 보면 중개업계에 온정적 시선만 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몇 년 새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거나 융자가 잡혀있는 집을 연결해주는 공인중개업자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세입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집주인에게는 "경매에 넘어가기 직전 전세금이라도 챙기라"며 설득하고, 세입자들에게는 "전세보증금은 법적으로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다"고 속여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이런 경우 경매 개시 후 선순위 근저당권자나 채권자가 소액임차인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배당이의 소송이라 한다. 경매로 집을 처분한 돈으로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을 보장해주면 근저당권자와 채권자들의 몫(배당)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개업자들의 '세입자 울리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직장 근처에 700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은 A씨는 집주인이 낸 중개수수료와 자신이 낸 수수료가 차이가 난다는 걸 알고 분통을 터트렸다. 7000만원 임대차 계약에는 중개수수료 요율 상한 0.4%가 적용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한이어서 고객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게 급했던 A씨는 중개업자와 협상을 할 여유가 없었고 28만원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집주인에게는 0.2%를 적용해 집주인은 절반인 14만원만 냈다는 걸 알고 따져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A씨는 "너무 아깝다"고 원통해했다.

중개업자들도 말 못할 사정은 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한시적 고객인 세입자보다는 근처에서 임대업을 하는 집주인들의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취약계층이냐를 따지기보다 고정적인 거래를 하는 집주인 편을 들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소위 '우량고객'에 대한 프리미엄이다.

더욱이 주변에는 박 씨와 같이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개업자들도 적지 않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퇴직자들이 몰리면서 중개업계는 과당경쟁 체제로 들어섰다.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장준순 공인중개사협회 부회장은 "일부 악덕 중개업자 혹은 협회에 가입돼 있지도 않고 개업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없이 영업하는 브로커들 때문에 대다수의 양심적인 중개업자들이 비난을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개업 공인중개사의 90% 이상이 40~50대 중장년층인데 이들의 노후가 흔들리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중개업자들의 사기와 얄팍한 속임수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중개업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윤철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중개보수에 대한 업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 스스로가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 노력을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나영 기자 dailybe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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