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앉아 주말 저녁뉴스를 보던 A씨. 수도권 견본주택에 모여든 구름인파를 보고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냉소는 이내 묘한 불안으로 바뀐다. 이른 출근을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인다. "이러다 나만 뒤쳐지는 게 아닌지…".
부동산 투자로 일찌감치 월급쟁이로서는 만지기 힘든 목돈을 만들었다는 동창생 E는 술이 몇순배 돌자 침을 튀겨가며 목청을 돋웠고, 무리 중 일부는 E로부터 투자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다른 일부는 고깝다는 듯이 자리를 뜨며 술판을 엎었다.
요즘 서울과 수도권 견본주택에 하루 5000명 정도 모이는 건 예사다. 누가봐도 인기 있다싶은 곳에는 하루 1만명도 거뜬하다. 견본주택에 수백 미터 긴 줄을 서서 입장하는 진풍경이 자주 벌어지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경매 법정 앞은 입찰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법정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두 세달 전 한산했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강남지역의 경매 낙찰가율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어떤 물건은 시세 수준으로 낙찰돼 왜 저런 걸 경매로 집어갈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부동산 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 5년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도권은 물론 서울 곳곳에도 미분양이 쌓이고, 그 사이 주택건설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 건설사 몇곳이 문을 닫기도 했다.
기존 주택도 매매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매도자들이 원하는 호가는 한창 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매수자들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지 않았다. 사고파는 시장에서 호가와 실구매 사이의 간극이 크면 거래가 일어날 수 없는 건 상식이다.
지금은 잠잠한 집값 대폭락론의 부추김도 심리를 자극했다. 2018년부터 인구가 줄어든다느니, 부동산 시장에도 일본식 침체가 곧 찾아온다느니, 장기간에 걸쳐 일어날 시나리오 중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 몇년 내에 모두 몰려올 것 같이 얘기하자 불안 심리가 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요즘 갑작스럽게 바뀐 분위기에 실수요자나 투자자 모두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집값은 다시 고개를 쳐드니 내집 없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빨리 집장만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투자자들은 주변의 청약통장을 활용해 프리미엄을 얻거나 똘똘한 미분양이라도 하나 빨리 꿰차야 하는 건 아닌지 주판알을 튕기느라 바쁘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만 기억하면 손해볼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그동안 골이 깊었으니 오르막이 나타난 것이고 언젠가 다시 내리막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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