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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관붕(官崩)사태'빅시리즈 기획<4>공무원의 영혼 왜 실종됐나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일단 몸부터 낮춰야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적폐(積弊ㆍ오랫동안 쌓인 폐단)론'을 앞세워 관료개혁을 예고하자 관가에서 터져나온 일성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현재 경제주체 가운데 가장 몸을 사리고 있는 곳은 관료사회다. 관료사회가 본질적으로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는 데다 사고수습과 구조대책 과정에서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진도의 사고현장이 아닌데도 다수의 공무원들은 공석은 물론이고 사석 모임에서도 최근 몇 가지 금기를 지키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있는 모임을 피할 것', '술을 마시지 말 것', 그리고 '웃지 말 것'이다. 중앙부처의 고위직 인사는 "관료 쪽에서 개혁의 빌미를 제공해줬다. 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면서 "개혁의 로드맵과 목표, 세부 실행방안이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조직이나 개인 차원에서 준비할 것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역대 정권마다 관료개혁을 감행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힘으로 누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분으로 누르는 것이다. 관료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힘으로 누른 경우라면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적폐론은 명분론에서 출발한다. 명분론은 힘으로 누르는 경우에 비해 개혁의 추진력과 폭발력이 크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민심을 등에 업기 때문이다. 힘으로 누르는 경우는 대체로 공무원의 인사평가제도를 정비하는 하드웨어, 관료보다 민간의 전문가그룹(산업계ㆍ학계ㆍ연구계 등)을 중용함으로써 경쟁을 촉발시키는 소프트웨어 등으로 추진된다.

그런데 역대 정권마다 '관료개혁에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은 정권은 없다. 정권 차원의 개혁의지가 퇴색되거나 관료사회의 저항에 부딪혀서다. 정권마다 저항의 수위는 단계를 밟아간다. 저항의 1단계는 관망이다. 현재 박근혜정부 관료사회가 그렇다. "할 일, 해야 할 일은 하되 파장이 크거나 논란이 큰 사안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앞장서지 않는다"이다. 물론 개혁에 찬성하는 공무원도 있지만 이들이 대놓고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료개혁은 결국 철밥통에 구멍을 내는 것이고 밥그릇을 빼앗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진전되면 2단계 조직적 저항이 시작된다. 역대 정권의 전철을 보면 징계를 받을 수준은 아닌 선에서 태업을 하는 방법과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모든 사안을 윗선에서 확인과 결재를 받는 방안, 겉으론 최대한 따르고 뒤에선 정치권ㆍ언론을 통해 선전전을 펼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집권 초반에 노동부의 한 간부는 노사정위 양대노총 대표와 노사정위 위원장이 합의한 내용에 법적 기속력이 없다는 취지의 문건을 작성해 배포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당정협의를 통해 각종 규제개혁 조치가 나왔지만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것도 공무원들의 태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386 운동권 출신을 중용하고 행정자치부(김두관), 법무부(강금실), 문화관광부(이창동) 등의 장관에 의외의 인물을 배치해 혁명적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관료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진행한 개혁은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말기에는 오히려 관료조직에 포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건설 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관료사회와 기성정치에 뿌리 깊은 불신을 가졌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이때 나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국정홍보처 업무보고에서 한 인수위 전문위원이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을 따지면서 국정홍보처 폐지를 강조하자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하소연했다.

대통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불신하다 보니 기댈 곳은 국민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산 수입쇠고기 촛불파동으로 초반부터 국민이 등을 돌리고 4대강 사업, 원전사업, 자원개발 사업 등은 지금의 문제가 된 토건마피아, 원전마피아 등을 양산시켰다. 아침 회의를 오전 7시30분에 하고 밤 늦게도 회의를 하는 이 전 대통령의 스타일은 관료사회에도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챙기다 보니 피로감이 확산되고 급기야 관료사회가 언론을 통해 여론전을 펴는 일도 있었다. 대불산단의 전봇대가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뽑혔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규제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관료개혁의 성패에 대해 관료들조차 "몸은 움직이겠지만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얻지 못하다 보니 관료사회의 조직적, 개인적인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권이 관료를 통제하든, 아니면 관료와 함께 일하면서 관료를 넘어서든 관건은 과연 그럴 역량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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