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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찾아서]'박준 뷰티랩' 박준 원장의 소록도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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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우의 음식 수발을 들고 있다. 사진은 유영달 봉사팀장(좌)과 박준 원장(우).

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우의 음식 수발을 들고 있다. 사진은 유영달 봉사팀장(좌)과 박준 원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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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고흥=아시아경제 스포츠투데이 장용준 기자]3월 어느 화창한 봄날 정오가 훌쩍 지났을 무렵 전라남도 고흥군의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눈에 많이 익은 한 남자가 열심히 환우들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그는 바로 '미용대통령'으로 불렸던 '박준 뷰티랩' 박준(63, 박남식) 원장이었다.

박 원장은 한때 한국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로 군림했으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주변인들은 그가 현재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조심스레 다가간 취재진에게 "안녕하세요"란 짧고 굵은 말 한마디로 인사를 대신했다.
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우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우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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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자신의 봉사 소식이 밖에 전해지길 원치 않는다며 취재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 순간에도 병동을 오가는 환우들이 그를 알아보고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박 원장은 틈틈이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이를 받아주면서도 머리 손질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들을 '단골손님'이라고 불렀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의 박준이 아닌가. 한센병 환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가끔은 그에게 미용을 맡기고 싶을 터였다. 박 원장이 한 번 방문할 때마다 구름처럼 몰려들 '단골손님'들의 광경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박준 원장이 일진 코스메틱에서 기증한 헤어 용품들을 사용해 한 환우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박준 원장이 일진 코스메틱에서 기증한 헤어 용품들을 사용해 한 환우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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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 명씩 그의 손을 거쳐 갈 때마다 기쁜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한센병의 고통도 그 감정의 표출을 막지 못 했다. 헤어용품 전문 업체 일진 코스메틱도 다양한 기증품으로 박 원장의 봉사활동을 함께해 그 열정을 배가시켰다.
박 원장의 손길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에게까지 계속됐다. 조금은 쉬엄쉬엄 할 법도 한데, 그는 아늑한 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구슬땀을 흘려가며 정성스레 작업을 이어갔다. 환갑이 넘은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가히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박준 원장이 국립소록도병원에서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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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일정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머리 잘라주기가 끝나자 박 원장은 병실을 일일이 돌며 환우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박 원장을 '삼촌'이라고 정겹게 부르는 대학생들과 일반인으로 이뤄진 자원봉사자들이 곁에 있었다. 이들은 환우 한명 한명을 자기 가족처럼 챙기며 섬세하게 보살폈다.

박 원장의 모든 활동은 오후 4시 가까이 돼서야 끝났다. 그는 뿌듯한 얼굴로 봉사자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눴다. 얼핏 들으니 뒤풀이로 인근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한잔 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이내 박 원장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연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한때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그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름없었다.

▲ 박준 원장의 봉사지, 소록도는?

소록도는 여의도 약 1.3배 면적의 섬이다. 그 모양이 어린 사슴과 닮아 소록도(小鹿島)라 불리게 됐다. 이곳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국립소록도병원과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약 1만 3000명의 환자 중 600여명이 현재 소록도에 거주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입구. 관광객들이 사철 푸른 소나무와 만개한 꽃들로 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소록도 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입구. 관광객들이 사철 푸른 소나무와 만개한 꽃들로 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소록도 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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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자료관.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한센병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소록도 자료관.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한센병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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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은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서린 장소로도 유명하다. 지난 1900년도 초기까지만 해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센병은 전염병으로 오해돼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인권을 박탈당한 환자들의 아픔이 섬 곳곳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

박준 원장이 소록도 환우들의 아픔이 서린 장소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은 김종신 사무과장(좌)과 박준 원장(우)

박준 원장이 소록도 환우들의 아픔이 서린 장소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은 김종신 사무과장(좌)과 박준 원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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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맡은 김종신 사무과장은 "현재 소록도에 가난은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곳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정부도 연간 예산 약 200억 원을 전액 지원하고 문화센터를 짓는 등의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병의 치료를 넘어서 환우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소록도 구라탑. 지난 1963년 건립됐으며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하단의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환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소록도 구라탑. 지난 1963년 건립됐으며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하단의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환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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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지난 1934년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기 시작해 1936년 12월 완공됐다. 이곳 소록도에 무성하게 자라난 소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구멍들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일제 수탈의 증거로 송진을 빼내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 지난 1934년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기 시작해 1936년 12월 완공됐다. 이곳 소록도에 무성하게 자라난 소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구멍들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일제 수탈의 증거로 송진을 빼내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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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원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소록도는 아픔의 섬에서 희망의 장소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가족과도 억지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설움은 이제 씻겨 내려가고 있다. 거주민들의 표정에서 웃음꽃이 필 날이 머지않았다.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날 소록도의 모습이 기대된다.




(소록도)고흥=스포츠투데이 장용준기자 zelra@asiae.co.k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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