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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칼럼 - '짝'의 죽음과, 연애를 전시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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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힘들다"라고 고백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오래전 한유정이 주연한 영화에 '짝'이라는 것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짝'은 고교 수준의 짝꿍이었지만, 영화 속에서나마 남학생과 여학생이 짝이 되는 일의 설렘과 흥분을 잊을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과 짝이 된다는 것은 행운이겠지만, 짝이 된 뒤 좋아하게 되는 것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옛사람들의 중매는 후자가 '사랑'에 별 하자가 없음을 입증해줬는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나을 리는 없다.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태어나, 단 한 사람으로 살다가, 문득 다른 사람을 만나 짝을 이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경우의 고통은 인간사를 얼마나 뒤흔들어 왔던가. 운명의 장난도 많았고 장난의 운명도 많았다.

한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인 '짝'은, 이 운명을 오락으로 개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왔다. 이름도 없이 보편화한 남자1과 여자3의 짝짓기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청춘남녀들에게, 혹은 청춘으로 가고 있거나, 청춘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관심사가 또한 어디 있겠는가. 한 사람의 사랑이 생겨나고 한 사람의 운명이 드리워지고 한 사람의 슬픔과 기쁨이 판가름나는 생살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묘한 동경과 쾌감과 절망을 동시에 느껴왔다.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호감을 얻고 그것이 '짝'으로 이어지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호감도 얻지 못하고 쓸쓸히 홀로 남게 되는 것. 그것이 게임이 되고 치열한 심리전이 되고 사람들을 유인하는 쇼가 될 때,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비판은 '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가지고, 그렇게 장난쳐도 되는 거냐'일 것이다. 그런 비판을 받으면서도 '짝'은 번성하는 인기를 누려왔다.

방송 촬영 도중에, 출연자가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은,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몹시 드물고 끔찍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짝짓기 스토리가 내내 공개되어온 만큼, 그녀의 죽음조차도 전시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일기에 쓰거나 전화로 말했다는 "힘들다"의 의미에 관해 세간의 추측들은 번지고, 심지어 그녀에 대한 신상털기의 소문까지 나돌고 있어, 그 죽음도 안면(安眠)이 어려울 판이다. 짝의 죽음은 프로그램 내부의 가혹할 수 있는 과정들이 주는 스트레스였을까. 아니면 삶의 다른 이유들과 결부된 것이었을까. 사랑이란 것이 이성을 쟁취하고 유혹하는 게임과 다르지 않다는 '삶의 모든 것의 오락화'는 이쯤에서 다시 지탄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짝'이란 말이 주는 운명과 숙명과 우연과 필연과 행복감과 우정과 그리움과 서러움까지. 한 여성의 죽음이 드리운, 감춰진 아픈 그늘과 겹치며, 우울한 후유증을 만들어내는 날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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