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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덩어리 어른들, 난투극 벌이다 - 연극 '대학살의 신'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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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덩어리 어른들, 난투극 벌이다 - 연극 '대학살의 신'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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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11살 남자 꼬마들이 몸싸움을 벌여 이가 부러진다. 이 일로 두 부부가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 자격으로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아하고 고상한 대화로 시작되는 두 부부의 만남. 그러나 이들은 대화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험악해지고 설전은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비방으로 번진다. 삿대질과 물건 던지기, 눈물이 뒤섞인 거친 싸움으로 치달으며 넷은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패닉 상태에 이른다. 말 그대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됐다.

'대학살의 신 Le Dieu du carnage'(제작 신시컴퍼니|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월 12일까지) 라는 연극 제목을 들으면 누구나 영화 '300'이나 '스팔타커스' 류의 으리으리한 그리스ㆍ로마 신화 비극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거다. 하지만 틀렸다. '대학살의 신'은 '아트' '매장 후의 대화' '스페인 연극' 등 주로 블랙 코미디 장르에서 장기를 보인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가 2008년에 쓴 희곡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다. '대학살의 신' 역시 블랙 코미디의 자장(磁場) 안에 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대학살'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끌어들인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유치함과 폭력성, 위선과 가식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 처음 서로가 약속했던 평화로운 대화가 어느 순간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변질되어 파국으로 치닫는 '대학살의 신' 내러티브는 우리들의 '고품격' 사회와 문화, 예절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를 현대인들에게 제시한다.
86분 남짓한 '대학살의 신'의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의 상황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가정과 학교, 회사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서로간의 소통 부재는 필연적으로 대립으로 향한다. 소통의 부재에 의한 대립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치졸하고 야만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밤 TV 속에서 목격한다. '대학살의 신' 속 네 부부의 싸움을 남 얘기로 치부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현대 사회 대기업의 무정함, 휴대폰에 중독된 사람들, 툭하면 소송에 의존하는 문화, 인간의 허영과 위선 등 여러 병폐들을 야스미나 레자는 '대학살의 신'을 통해 지적이고 세련된 필체로 신랄하게 비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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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학살의 신'은 지난 2010년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이다. '오이디푸스' '레이디 맥베스' 등 명실공히 한국 연극계의 대모인 한태숙 연출가는 섬세한 연출력과 놀라운 한국화 과정으로 '대학살의 신'을 보편성과 독창성을 겸비한 '한국' 연극으로 재창조시켰다. 초연 당시 신들린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가해자 부모 역의 박지일과 서주희가 같은 역으로 재등장하며, 연극과 TV 드라마ㆍ영화 등 활발한 크로스오버를 꾀하는 이대연과 베테랑 연극배우 이연규가 피해자 부모 역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모두 대학로에서 무대 밥을 먹어온 네 명의 중견 연극 배우들은 '앙상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연극에서 '합'(合)이 어떤 의미인지는 '대학살의 신'을 보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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