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락하는 환율, 이러다 물가잡고 수출 놓치나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고물가ㆍ고유가ㆍ고금리의 3고(高)악재에 빠진 한국 경제가 물가와 환율 두 복병이 마지노선에서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물가잡기의 또 다른 카드였던 환율이 1100원대까지 추락하면서 물가는 잡되 수출은 감소시키는 딜레마에 빠졌다. 정책및 외환당국이 물가를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출기업들이 물가에 희생양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6.00원 내린 1104.20원에 마감하면서 연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직전 연저점은 지난 2월8일 기록한 1104.70원이다. 원ㆍ달러환율은 그간 유가와 곡물가ㆍ원자재가격 상승에 대외악재(일본 지진, 중동ㆍ아프리카사태)에도 상승(원화가치 하락)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당국의 미세소정(스무딩 오퍼레이션) 등에 힘입어 1100∼1130원대에서 박스권을 형성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요인에 대해 ▲글로벌 달러 약세 ▲유가 하락 ▲국내 외국인 주식 순매수 등을 꼽고 있다. 일부에서는 1050원대까지 내려갈 수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당국은 당분간 환율 하락을 용인할 분위기다. 2월 한국은행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원화강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화환율이 어느 정도 변동하는 것은 기업들이 감내해야 한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우리 수출 대기업은 금리인상에 따른 환율변동을 감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물가를 잡기해서는 환율을 더 내려야 하고 이 정도는 기업이 견딜수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수출 대기업은 지난 3년간(2008년 43조원, 2009년 80조원, 2010년 18조원) 고환율(1100원대)상황에서 총 141조원의 이익을 봤고 환율상승효과는 16개 수출대기업에 집중됐다"며 고환율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환율을 낮춰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인위적 개입은 없다는 입장이었다가 환율하락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재정부는 유가와 원자재, 환율 등이 10% 상승(하락)할 때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이 0.8%포인트, 유가 0.2%포인트, 기타원자재가격 0.1%포인트로 판단했다.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유가의 4배에 이른다.
환율이 1050원대까지 내려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와 주요기업들은 올해 살림살이의 환율 기준을 1100원대로 잡았고 마지노선을 1050원으로 봤다. 유가(80∼90달러)는 이미 그 기준을 넘었다.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수출기업에는 원화환산 매출액 감소와 가격경쟁력 악화, 채산성 악화로 이어진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환율이 1050원까지 떨어지면 국내 91개 주력 수출기업은 이익은 못내고 오히려 5조 9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환율을 1080원, 유가는 82달러를 전망했지만 이미 이 수준을 넘어섰다. 환율이 10원 이상 내려가면 삼성전자 혼자 3000억원의 손실을 본다는 추정까지 나온다.
수출전망도 밝지 않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수출기업 1003곳을 상대로 수출경기전망지수(100기준, 100이상시 악화 이하시 반대)는 1분기 116.3에서 2분기 105.4로 10.9포인트가 줄었다. 수출이 잘될 것이라는 응답이 여전히 많지만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우려해서다. 지경부 관계자는 "유가는 2개월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데 지난 2월부터 100달러대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4월부터는 원유,석유제품 수입액이 크게 늘어 무역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의 급격한 변동 방지와 환리스크 관리, 추가적 금리인상, 물가인상 억제를 위한 유류세 인하 등을 주문하고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학회 세미나에서 "하반기까지 기준금리가 3.5%까지 인상되고 환율이 950원까지 내려가면 경제성장률이 3.9% 수준까지 하락하고 경상수지는 26억달러 정도 악화되는 것으로 추정됐다"면서 "금리와 환율정책을 조합해 물가를 잡으려 할 경우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원화강세를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췄다는 진단도 놔왔다. 박상수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원ㆍ달러 환율의 영향력은 지난 10년 동안 10분의 1수준으로 낮아져 올해는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물것"이라며 "기업들은 환 관리를 달러 위주의 관점보다는 복수통화 관점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석유는 서민들에게 생활필수품화 돼 소비절약에도 한계가 있다"면서 "국회가 정한 교통에너지환경세 기본세율이 휘발유 L(리터)당 475원임에도 정부는 이보다 11.4%나 높은 529원의 세금을 걷고 있다"며 유류세 인하를 거듭 주장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2월 물가통계 기준 유류세가 10% 인하되면 휘발유는 L당 74.6원, 경유는 52.9원이 인하돼 소비자물가지수를 0.19%포인트 낮출 수 있다"면서 "정부는 유류세 인하는 물론 원자재 수급안정을 위한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 물가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