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 미국 부동산전문업체 메리티지 홈스의 홈스 회장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맞이했던 지난 2008년 9월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부동산 대폭락을 예감한 주택 매입자들이 계약을 취소하기 위해 본사에 들이닥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홈스 회장은 회사를 되살려내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다. 버블시절 맺었던 부지 매입 계약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으며 취소했고, 한때 2300명에 달하던 직원 가운데 4분의3을 해고했다. 또 옵션을 없애고 지붕과 창문 사이즈를 줄이는 등의 노력을 통해 주택 건축 단가를 절반으로 낮췄다.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이라고는 정부 지원을 받는 ‘생애 첫 주택 매입자’들이 유일했기 때문. 높은 천장과 넓은 계단, 대리석으로 만든 주방 등이 갖춰진 호화 주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홈스는 과거와 달리 저가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의 경제 구조가 뿌리부터 바뀌고 있다. 지난 수 십 년 간 이어진 '소비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 소비 및 부채 중심으로 굴러가던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수출·저축 위주로 급격하게 개편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자산 버블과 신용 팽창, 저유가 등 소비의 시대를 이끌었던 여건이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 변화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재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에 나타난 구조적 변화가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미시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적게 벌고 덜 쓴다 = 변화는 '얇아진 지갑'에서 시작됐다. 자산은 줄어드는데 반해 부채는 늘어나면서 소비를 꺼리게 됐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의 가계 자산은 2007년 이후 12조달러, 18% 감소한 상태다. 집값은 2007년 정점 대비 29% 떨어졌다. 반면 20년 전 가처분 소득의 80%를 밑돌던 부채는 2007년 129%로 급증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데 앞으로 6~7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변화는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1992년 국내총생산(GDP)의 70% 수준이었던 개인 소비지출과 주택 대출 원리금 상환을 포함한 주거비는 2005년 76%로 늘어났으나 작년 73%로 감소세한 것.


부동산을 매입하는 미국인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과거처럼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주택을 선호하게 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2008년 새롭게 구입하는 주택 크기의 중간값이 13년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신용카드 규모 역시 5분의1 줄어들었다.


◆ 더 이상 '소비의 시대'는 없다 = 그렇다면 경기회복에 이뤄지면 소비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까. 과거 1973~75년과 1981~82년의 침체 사례를 되돌아보면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통상적으로 침체 이후에는 강한 경기 반등이 뒤따르기 때문. 실제로 2008년 4분기 -3.8%로 사상 최악의 성장률을 보인 미국 경제는 2009년 4분기 6%에 육박하는 반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과거 경기침체와 달리 이번 침체는 금융위기를 원인으로 한다. 금융위기는 저축을 투자로 돌리는 순환고리 자체를 망가뜨렸고, 소비자와 기업체는 과잉 설비와 건설, 버블 시절 누적된 부채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작년 반등에 성공했던 미국 경제는 올해 4%에 못 미치는 부진한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실업률도 좀처럼 낮춰지지 않아 올 연말까지 9%를 웃돌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은 정부 지출이 민간 수요와 투자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지만 경기부양책이 단계적으로 철수되면서 결국 민간 소비가 경기 회복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나 소비 부진이 제2의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 이 때문에 백악관도 쉽사리 손을 놓을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6년 내로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기업들 '해외로' =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내세워 미국 내 가구, 의류, 소비자 가전 시장을 장악하면서 해외 영토를 공략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머징 마켓의 성장과 달러화 약세 역시 미국의 수출을 부추기는 요소다.


JP모건 체이스의 브루스 카스먼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세계의 소비국, 이머징 국가는 생산국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이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글로벌 소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이머징마켓의 34%에 못 미친다. 8년만에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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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약달러가 미국 원자재 관련 기업들의 수출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의 진정한 수출 성장은 기술 집약 기업들이 이끌 전망이다. 미국은 인건비 측면에서 중국·인도 등에 밀리지만 아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특히 제약과 IT, 자동차, 전자 등 제조업체들 비롯해 영화와 건축, 광고 등 창조적 서비스 기업의 수출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세계 시장에서 26억달러를 벌어들인 영화 '아바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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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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