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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천의 막전막후]정윤회 '황제수사'의 원조

최종수정 2017.05.17 09:16 기사입력 2017.05.15 11:24

박관천 본지 편집국 전문위원
[아시아경제 박관천 전문위원] 지난 2014년 12월 1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받는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중앙지검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출입증 교부절차 없이 들어왔다. 조사도중에도 커피를 타마시고, 검사실을 서성이고, 스트레칭을 한 뒤 다리를 꼬고 검사 앞에 앉는 그의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서슬퍼른 검찰 앞에서 그처럼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데 부러움마저 느꼈다. 우병우 보다 앞선 황제수사 원조라 할 수 있다.

조사를 받은 뒤 5일 만인 12월 16일 새벽 1시40분. 필자는 연이은 심야조사에 쓰러져 서울 강북구 한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체포됐다. 이어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됐다. 얇은 모포 한 장에 의지해 그해 겨울을 견뎠다.

세간에 '정윤회 문건'이라고 알려진 청와대 내부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2014년 1월 6일이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가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을 거쳐 본인에게 전달됐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국가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수많은 고민과 번뇌 끝에 보고서를 썼다. [청 비서실장 교체관련 VIP최측근 정윤회동향]. 보고서는 지시 라인 역순을 거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게 보고됐다.

상사의 지시를 받아 철저히 조사를 하고 충실하게 보고서를 썼는데 돌아온 것은 구속이었다. 이 문건으로 인해 고(故) 최경락 경위와 필자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혹독한 댓가를 치뤘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 얼마전 저녁을 함께 한 친구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문고리3인방, 십상시, 권력서열 1·2·3위 등을 거론하며 필자에게 신조어 제조기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 단어들은 농담이 아니다. 십수년간 민정에 몸담았던 탓에 이들의 행태를 잘 알았던 필자의 입장에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함축적 표현이었다.
지난 3월 헌정 초유의 현직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결정, 구속수감 등을 지켜보며 당시 보고서 '내용은 지라시, 문서유출은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격분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시야에 어렸다. "가래, 아니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는데…"라는 회한과 아픔이 엄습했다.

공직자가 업무상 작성한 문건을 언론사에 제공했다면 틀림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하지만 필자는 언론사는 물론 외부인에게 준 사실이 없음에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수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했다. 최순실 게이트로까지 이어진 문건 내용에 담긴 국정농단 유무는 형사1부, 문서유출은 특수2부로 배당된 것만 봐도 그렇다. 문건유출 국기문란에 초점을 맞추었던 수사로 불똥이 반대로 튄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경찰공무원 1명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민정의 회유가 있었다고 썼다. 그러나 그가 운명을 달리한 지 2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가 남긴 궁금증에 대해 국민들은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작년 말 회유받은 사람과 회유한 당사자까지 언론에 보도됐는데 어떤 회유가 있었고 누가 회유를 지시했는지 아직 대답이 없다. 그리고 문건내용에 대한 수사는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재조사가 착수됐다. 세계사의 이성이라 불리는 헤겔은 "역사는 자유로움에 기초하여 교훈을 끌어냄으로서 불행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고 반성적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때의 자유로움은 정의와 도덕적 가치에 기반해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려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재조사를 전 정권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뒤에 숨어 국정을 휘젓는 비선에 눈감고, 진실을 감추려 애꿎은 사람들을 핍박하는 권력의 행태에 대한 규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박관천 전문위원 parkgc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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