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무호 피격 정교한 대응, 힘의 과시보다 절제할 때
AD
원본보기 아이콘

'미상의 비행체'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가 훼손됐다. 지난 4일 미상의 비행체 2기가 선체 외판을 1분 간격으로 타격했고, 파손 규모는 폭 5m·깊이 7m에 이른다. 미군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선박 구출 구상인 '프로젝트 프리덤'이 거론된 직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이란 또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경고성 차원에서 자폭형 무인기를 투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지에 투입된 정부 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를 확인한 청와대와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한국 선박을 타격한 비행체 잔해를 외교 행낭으로 국내에 들여와 추가 분석한 뒤, 필요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평가는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공격을 받고도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한국 선박의 안전이 위협받은 만큼 더 단호한 메시지와 즉각적인 '보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이란전쟁 이후의 불안정한 정세, 관련국과의 관계, 에너지 수급과 해상 물류망까지 고려하면 신중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양쪽 모두 귀담아들을 대목은 있다. 국가가 자국 선박 피해에 침묵하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직 공격 주체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복부터 입에 올리는 것은 더 위험하다. 보복은 군사·외교·법적 책임을 동반하는 중대한 국가행위다. 한국은 원치 않는 확전의 논리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지난 3월 일본, 중국, 프랑스 국적 선박이 공격받았을 때도 이들 국가는 일관되게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굴욕적인 침묵을 멈추라"며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패가망신론'까지 끌어와 강경 대응을 압박하는 것도 신중하지 못하다. 이런 압박이 미국의 군사적 요구와 맞물릴 경우, 더 큰 군사적·경제적 부담을 자초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대응이다. 핵심 명분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통항의 자유'여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특정 국가만의 바다가 아니라 세계 에너지와 물류의 숨통이다. 한국은 전쟁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교역국이자 해상교통로 안정에 중대한 이해를 가진 국가다. 이 원칙을 앞세워 전쟁 당사국들을 상대로 한국의 입장을 단계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AD

헨리 키신저식 현실주의 외교의 요체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힘의 절제에 있었다. 이재명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소리만 요란한 보복론이 아니라 책임 있는 압박과 치밀한 외교다. 등 떠밀리듯 보복을 입에 담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