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영국·페르시아 4개월 교전
'그레이트 게임'과 유사한 미·중 패권분쟁
이란전쟁이 2개월을 넘겨가며 장기화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19세기의 한 전쟁이 있다. 바로 영국·페르시아 전쟁이다. 1856년 크림전쟁 종전 직후 영국과 당시 이란을 지배하던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 간의 전쟁으로 4개월간 오늘날 이란 전쟁 주 무대인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해안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이 전투는 크림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 직후 러시아가 페르시아를 원조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영국은 러시아가 페르시아를 앞세워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서부 일대로 세력 확장에 나서려는 것을 경계했고, 이에 이란 전 해안을 봉쇄하고 4개월간 이란 남부 해안 도시들을 점령했다.
양측이 4개월간 교전하는 동안 아시아 전역에서 정세가 크게 요동쳤다. 인도에서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인 용병부대인 세포이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인도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또한 중국에서는 2차 아편전쟁의 원인이 되는 애로호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해상봉쇄로 경제난에 시달리던 페르시아 제국과 인도 및 중국 문제로 발을 빼야 할 상황에 처한 영국은 곧바로 휴전 합의에 들어가 교전은 4개월 만에 종식됐다.
이후 열강들의 눈은 동아시아로 향했다. 인도의 세포이 반란은 이듬해인 1857년 진압돼 영국은 인도를 직할통치해 정식으로 '영국령 인도 식민지'로 세웠다. 바로 그다음 해인 1858년 프랑스는 애로호 사건 이후 2차 아편전쟁에서 이득을 취하고자 베트남의 다낭항구를 공격해 점령했다.
그리고 2차 아편전쟁에서 손을 잡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2년 뒤인 1860년,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함락하고 자금성을 약탈했다. 청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모든 조건을 받아주며 굴욕적인 베이징조약에 서명해야 했고, 러시아는 이 협정의 중재자를 자처한 대신 연해주를 차지했다. 그 후 불과 6년 뒤, 러시아 함대는 원산 앞바다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프랑스는 병인양요를 일으켜 조선을 공격했다.
19세기 당시 영국·페르시아 전쟁에서 시작된 국제정세의 급변이 결국 한반도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밀려왔음을 보여준다. 그 당시에도 국제정세가 이리 빨리 움직였던 것은 영국과 러시아가 전 세계에 걸쳐 벌였던 패권분쟁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양상 때문이었다. 양측은 크림반도에서 1차 충돌한 뒤, 이란에서 2차 충돌했고, 한반도 지역에서 또다시 충돌했다.
이제 세계의 시선은 19세기 당시와 똑같이 동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특히 주목받고 있는 곳은 대만해협이다. 대만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동남아시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 충돌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 미·중 간 전면적인 패권경쟁도 19세기 그레이트 게임과 상당히 유사하게 전개되는 흐름을 보인다. 중국의 주요 원유 거래국가였던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미국에 의해 공격당하고,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개 중인 미국과 이란의 이중 봉쇄 속에 중국의 이란산 석유 수입량은 크게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만해협 문제를 두고 다시 격돌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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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세기 당시보다 동북아시아 정세는 더욱 복잡해져 있다. 한반도는 둘로 갈라져 있고, 미국과 전방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군사대국 중국과 이번 분쟁을 재무장 기회로 여기는 일본이 한국을 에워싸고 있다. 그동안 주한미군과 한반도 정책에 있어 한국 방위를 우선해 왔던 미국 정부도,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정책에서 상당히 유동적인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병인양요 이후 제대로 국제사회에 대응하지 못했던 조선왕조의 모습을 거울삼아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에 휘말리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해선 안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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