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형사책임 쉽게 인정 안하는 흐름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회장 무죄 선고
박순관 아리셀 대표 2심에서 대폭 감경
경영책임자의 구체적 권한 행사·지시가
사고 발생에 어떻게 연결됐는지가 관건

[Invest&Law]무죄·감형에 흔들리는 중처법, 첨예해진 '오너 연결고리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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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서 기업 경영진, 특히 오너의 형사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고, 경영책임자의 구체적인 권한 행사나 지시가 사고 발생과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다. 무죄와 감형 판결이 잇따르면서 법조계에서는 "중처법이 실제 오너 처벌로 이어지려면 '연결고리 입증'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이영은 판사는 지난 2월 '중처법 1호 사건'으로 불린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도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중처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해 중처법 1호 사고로 불렸다. 검찰은 정 회장이 골재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위험한 '하부 굴착' 공법을 묵인·지시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입증할 물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당시 삼표산업은 별도의 대표이사가 선임돼 안전보건 전담 조직과 예산을 관리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중처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 회장이 개입한 증거가 없으며, 사고의 원인이 된 구체적인 작업 방식 역시 현장 소장이나 대표이사의 결정 영역일 뿐 정 회장이 직접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 대형로펌 중대재해전문 변호사는 "본래 중처법은 사업장의 공장장(사업장 단위)만 처벌하니 서울 본사 대표(사업 단위)가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서 출발한 법"이라며 "이번 판결은 오너를 처벌하겠다는 법의 취지가 구체적인 연결고리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현장 사고의 책임을 물어 그룹 총수를 기소한 꼴인데, 현장 실무와 총수의 의사결정 사이의 법리적 거리를 검찰이 좁히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망자가 23명이나 발생한 아리셀 화재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 박순관 대표는 지난달 항소심에서 징역 4년으로 대폭 감경 받았다. 재판부가 관련 법령을 엄격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우선 재판부는 비상구 설치 의무와 관련,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위험물질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비상구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을 뿐 '작업장이 없는 층'까지 설치하라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법령에 '비상통로'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구체적인 설치 기준이 부재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의무를 근거로 형사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삼표산업, 아리셀 사건 모두 검찰이 항소한 상태다. 대기업 총수나 실질적 경영주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최종 가이드라인은 상급심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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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중처법이 대표이사에게 안전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감을 부여하고 경각심을 일깨운 성과는 분명히 거뒀다"면서도 "안전 조치 미비에 대해 형사 처벌로만 대응하는 방식에는 법리적·현실적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민사상 책임을 강화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안전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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