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이 사치품 소비 보조하는 역설
온누리상품권, 업종은 제한돼도 품목 제한은 없어
일부 대형 식자재마트, 정부 지원 덕에 가격 경쟁력 독점
"세계 위스키를 한자리에! 각종 위스키 최저가! 품절주의!"
서울 광진구의 한 전통시장 안에 자리 잡은 J마트는 입구부터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 안내문구와 위스키 최저가 보장 광고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입구의 자동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가장 먼저 고가의 샴페인이 고객들을 반겼다. 수백 종이 넘는 와인과 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가 줄줄이 들어선 진열대가 매장의 정중앙을 차지했다.
"가격이 저렴해 퇴근길에 종종 방문한다"는 인근 직장인은 이날도 '라가불린 8년', '글렌피딕 15년', '발베니 12년 더블우드' 등 스카치위스키 세 병을 구매했다.
그는 "라가불린 8년이 데일리샷(온라인 주류 구매 플랫폼) 최저가가 7만5000원인데, 여기서는 6만2200원이면 살 수 있고, 온누리상품권으로 10% 추가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여기에 5% 추가 환급행사와 자체 마일리지 적립 행사까지 붙으면 할인 폭이 더 커진다"고 귀띔했다.
'주류성지' 거듭난 전통시장 식자재 마트
이 마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스키 성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빠르게 몸집이 커지고 있다.
5일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J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339억6000만원으로 1년 전(254억4000만원)보다 33.5%, 2년 전(216억5000만원)과 비교해선 56.9% 늘었다. 영업이익도 지난해 12억9000만원으로 전년(5억3000만원) 대비 143.9% 증가했다. 주류를 포함한 전체 매출이 눈에 띄는 성장세다. 다양한 할인 혜택 등으로 매력적인 가격을 제공한 덕분이다.
J마트뿐만 아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M마트를 비롯해 수도권에만 6개 식자재 마트가 애주가들 사이에서 핵심 주류 판매처로 부상했다. 전통시장 골목 한켠에 자리 잡은 식자재마트가 '수입주류의 성지'라는 위상을 갖게 된 중심에는 '온누리상품권'이 있다.
소상공인 보호 취지 무색…주류 시장 왜곡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전통시장법)'에 따라 전통시장 및 상점가, 상권활성화구역의 판매를 촉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9년부터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전용 상품권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류 상품권과 온라인상품권(디지털온누리)으로 나뉜다. 지류형은 5% 할인가로 월 5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고, 디지털 온누리상품권은 상품권 금액의 10% 할인가로 충전해 사용할 수 있는데, 최대 보유한도금액은 100만원이다. 실제로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면 기본 10% 할인된 가격에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 여기에 설·추석 등 명절에는 할인율이 15%까지 오르고, 구매액의 약 10~15%를 돌려주는 '페이백 이벤트'도 수시로 진행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목표로 발행된 온누리상품권이 주류 할인에 사용되며 일종의 '주류 성지' 탄생에 양분을 제공한 배경에는 상품권 사용 품목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법의 사각지대가 있다. 현재 전통시장법은 일부 업종에 대해 가맹점 등록을 제한하고 있는데, 주류 도·소매업이 대표적으로 여기 해당한다.
하지만 품목에 대한 제한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제한업종이 아닌 업종으로 가맹점 등록이 정식으로 이뤄지기만 하면 그 안에서는 품목에 제한 없이 상품권을 통해 할인된 가격에 제품 구매가 가능하다. 현재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하며 주류 매출을 늘리고 있는 식자재마트 등도 '도·소매업/식품잡화점'으로 가맹점 등록을 하고 고가의 주류를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담배·비만약까지 온누리상품권 확대
이런 꼼수 영업은 사치품에 해당하는 고가의 주류를 정부 예산으로 할인해준다는 점에서 제도의 본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9월 제도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업종 제한마저 완화했다. 대표적으로 담배 도매·중개업과 보건업(병·의원, 치과, 한방)을 제한업종에서 해제했다.
이로 인해 상품권이 담배 구매와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 등에 사용되면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로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초래하는 담배 할인 구매 수단과 다이어트 보조금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 꼼수 영업으로 소수의 사업자들이 막대한 이득을 챙기면서 주류 업계에서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식자재마트들이 세금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서면서 정작 가맹 등록이 제한된 인근 주류소매점들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해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상품권의 당초 취지는 소상공인 진흥이었지만 현재 양상은 제도의 빈틈으로 인해 오히려 제한 업종의 소상공인 부담을 가중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식자재마트 인근에서 영업 중인 주류소매점들은 대부분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J마트의 반경 3㎞에만 주류소매점이 13곳이 영업 중이고, 주요 6개 식자재마트로 확대하면 매장 수는 77개까지 늘어난다. 이들 중 한 업주는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데 전통시장에 걸쳐있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혜택을 독점하고 있다"면서 "일종의 역차별이라는 생각까지 든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10%의 가격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주류업계 관계자도 "현행 제도는 정부가 일부 상인들이 왜곡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는 꼴"이라며 "이들의 영업이 사실상 전국구로 영향을 미치면서 근방의 소상인은 물론 전국의 영세 주류 판매 사업자에게 전방위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온누리상품권 사용처 30억원 미만 점포로 제한
가맹점 매출 상한선이 없어 일부 전통시장 내 대형 업체들이 부당하게 혜택을 받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도 지난 9월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기준을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으로 제한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상품권 사용처를 연 매출 30억원 이하 점포로 제한하면서 전국 약 20만개 가맹점 중 0.5%인 1만여개 점포에서 사용이 제한될 것이며, 이에 따라 고가의 사치 제품과 기호 식품 등을 취급하는 업종에 대한 자연스러운 제한 효과도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대책은 현재 이재관 의원의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가맹 기준 강화에 대해 지역 상권에선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분위기다. 현재 일부 대형 식자재마트들이 해당 규제를 피하기 위해 '쪼개기 건축' 등을 통해 매장 면적을 3000㎡ 이내로 줄여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매장들은 법인 분리 등을 통해서 가맹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매출 상한을 더욱 낮추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 품목을 제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맹점에서 다양한 품목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품목만 결제에 제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식자재마트에서 주류와 일반 식료품을 함께 구매했을 때 주류 제품만 온누리상품권이 아닌 방식으로 별도 결제를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가맹점들이 매장에서 주류나 다이어트 치료제 등을 판매하는지 여부는 가맹점주의 선관주의의무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품목별로 사용에 제한을 걸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상품권 가맹 등록 제한·허용 업종과 관련해선 재검토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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