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삶의 끝에서 인간다움을 묻다
이서현 장편소설 '안락한 삶'
안락사마저 AI에게 허가받는 시대
삶과 죽음의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
AI, 인간의 고통 계산할 수 있지만
관계와 감정까지 대신할 수는 없어
"사는 것만큼이나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도, 여유도, 돈도, 그리고 희망도. 흘러가는 모든 순간이 고통으로 점철돼 있을 때, 그래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생로병사 중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태어남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고, 삶의 끝에서도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소망조차 제도와 사회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된다.
이서현의 장편소설 '안락한 삶'은 안락사가 제도화되고 인공지능(AI)이 죽음을 허가하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다. 민간 안락사 기업 '스틸 라이프'의 프로그래머 '미래'와, 희귀병에 걸려 안락사를 원하지만 제도와 AI에 가로막힌 이복동생 '영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세계에 0.2%만 앓고 있으며 발병 후 3년 이상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 병이지만 '미성년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영원의 죽음은 허락되지 않는다. 13번의 테스트에 균일하게 찍어낸 듯 확률은 언제나 7%. 법은 미성년자 안락사에 '얼굴도 본 적 없는'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한다. '안락사'로 부모를 한날한시에 잃었던 미래는 이제 보호자이자 유일한 가족으로서, 이복동생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작품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죽음을 둘러싼 감정, 특히 남겨진 이의 삶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고통을 끝내려는 영원의 선택은 남겨진 이의 사랑과 용서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
작품은 "죽음을 허락하는 일이 과연 인간적인가"라는 물음에 결국 중요한 건 제도나 확률이 아니라고 답한다. 안락사라는 논의를 넘어, 가족 관계를 새롭게 맺어가는 과정을 통해 소설은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아파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AI가 고통을 계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감정과 사랑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 작가는 제도와 기술, 윤리와 감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든 논의의 중심에 '사람'을 놓는다. 삶과 죽음, 용기와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남은 이를 지키려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낸다.
소설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국립 연명의료 관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생애 마지막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약한 사람이 3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전체 성인 인구의 7%에 육박한 수치이며, 존엄사와 웰다잉(Well-dying) 문화,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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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제도와 기술이 인간의 죽음을 관리하는 세계 속에서, 소설은 끝까지 인간성, 가족, 감정에 대에 대한 질문의 끈을 놓지 않는다. 법이 아닌 '문학'의 언어로 치밀하게 또 치열하게 묻고 답한다.
안락한 삶 | 이서현 지음 | 열림원 | 312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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