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미래]김두규 교수 "용산은 '부자가 되는 터'…상업의 도시로 개발해야"
'풍수리지 전문가' 김두규 우석대 교수 인터뷰
'배산임수 지형' 용산, 전형적 명당 입지
"물, 끊임없이 변화…생산활동 민첩"
한남동 공관촌, '좌청룡' 위치…명예·벼슬 상징
"용산 개발 통해 서울 더 큰 도시로"
서울 용산은 풍수지리에서 대표적인 명당이다. 북쪽에 산이, 남쪽에 물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이 좋아야 인물이 좋고 물이 있어야 재물이 늘어난다’고 본다. 용산은 남산이 차가운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고 한강이 가까이 있어 식수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좋은 땅이었다.
국내 풍수지리 전문가인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특히 ‘물’에 주목한다. 용산은 과거 배가 주요 이동 수단일 때 배들이 정박하던 곳으로, 전국 각지로 이동하고 물류를 운반하기에 최적화된 입지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역세권이다. 그는 "용산은 명당의 핵심 요건인 ‘접근성’을 갖추고 있으며 현대적 개념에서도 좋은 터"라고 평가했다.
오랜 시간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입지적 영향이 컸다. 용산은 고려 말에는 몽골군 병참기지로, 임진왜란 때는 왜군 기지로 이용됐다.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지배의 중심축인 조선 주차군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도읍지가 될 뻔했던 역사도 있다. 고려 숙종 때 최사추, 윤관이라는 두 대신이 한양(청와대 터), 노원, 해촌(도봉구 일대)과 함께 용산을 도읍지 후보로 올렸다. 하지만 숙종은 외적의 침입을 우려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을 도읍지로 선택했다. 김 교수는 "한강이 흘러 개방적인 용산이 고려와 조선의 도읍지였다면 국운이 상승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용산은 ‘부자가 사는 터’라기보다는 ‘부자가 되는 터’다. 이 역시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강 주변으로 농경지가 형성돼 일터를 가까이 둘 수 있었고 집이 안정된 땅에 있어 주변 신뢰와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실용적 차원을 넘어 정서적으로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의 성질을 따라 변화를 민감하게 바라보게 되고, 생산 활동에도 적극적이고 민첩해져 자연스럽게 잘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성북동과 평창동은 권력의 상징인 사대문과 가까워 ‘부자가 사는 터’였다.
용산은 과거만 해도 산비탈로 주거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이후 도로·상하수도가 정비되면서 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다.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한남동 승지원은 용산 중심 맥(남산-그랜드하얏트호텔-승지원-녹사평역-둔지산-국립중앙박물관)에 위치해 있다. 이 회장은 풍수지리를 중시해 기업 경영에도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남동은 과거부터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의 공관이 위치한 ‘권력의 땅’이다. 김 교수는 "부촌이 용산 중심 맥의 우측(우청룡)에 위치한다면 한남동 공관촌은 좌측(좌청룡)에 해당한다"며 "명예와 벼슬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기서는 돈을 밝히거나 명예를 범하면 탈이 난다"고 설명했다.
용산은 풍수지리로 봐도, 서울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지다. 서울이 한강을 통해 서해로, 서해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작점에 있어서다. 김 교수는 "용산을 잘 개발하면 서울이 더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조선 500년 도읍지였던 사대문 안이 ‘문화·관광·역사의 상징’이라면 용산은 ‘상업의 상징’으로 개발하자"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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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용산 정비창·용산역 일대 넓은 부지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와 같은 빌딩을 건립하는 동시에 한강 밤섬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용산의 수구(水口)로 만들어 재물운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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