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각본집이다.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을 모두 소개한다. '오펜하이머' 상영시간은 3시간9초. 긴 시간이지만 이마저도 놀란 감독이 고집한 아이맥스(IMAX) 필름의 영사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고려한 한계를 내포한다. 애초 의도했던 모든 그림을 스크린에 담아낼 수 없었다. 음향도 마찬가지. 아이맥스 촬영은 필연적으로 카메라 소음 문제가 존재하지만, 감독이 현장성 존중을 이유로 후시녹음을 하지 않으면서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대본집은 제한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한다.

[책 한 모금]영화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 '오펜하이머' 각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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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그가 답을 알아내겠죠.

오펜하이머: 그 답이 파국이라면요?

아인슈타인: 그럼 멈춰야죠. 발견한 사실을 나치와도 공유해야 하고요. 어느 쪽도 세상을 파멸 못 시키도록.

난 발길을 돌린다

아인슈타인: 로버트? (종이 뭉치를 건네며) 이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할 일이오.

<111쪽>


보어: 정치인들에게 이해시켜야 해. 이 새로운 무기가 세상을 바꿀 거라는 걸. 나도 내 할 일을 하겠지만 자넨… (나를 가리킨다) 이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원자폭탄의 아버지.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힘을 준 자. 세상은 자넬 떠받들겠지. 자네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167쪽>

모리슨: 핵무기를 인간에게 쓰는 게 옳은 일일까요?

오펜하이머: 우린 이론가예요. 늘 미래를 상상하죠. 상상은 우릴 두렵게 합니다. 하지만 알기 전엔 두렵지 않고 써보기 전까진 알 수 없어요. 세상이 로스앨러모스의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되면 인류가 경험 못 한 평화가 찾아올 겁니다. 루스벨트가 늘 구상했던 국제 협력에 기반한 평화 말이죠.

<182쪽>


어두운 천둥의 파도가 밀려오고 끔찍한 아름다움은 곧 공포로 변한다. 번쩍이는 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그 안의 불길이 지옥 같은 주홍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걸 보며 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먼지구름이 자줏빛 열기로 균열을 일으키며 피어오른다.소리가 차츰 잦아들고, 사막의 대지에 다시 밤이 찾아오자 프랭크가 나를 쳐다본다.

프랭크: (나직하게) 성공이야.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212쪽>

나는 몹시 불편한 기색으로 내 두 손을 감싸 쥔다.

오펜하이머: 대통령님, 전 지금 제 손에 피가 묻은 느낌입니다.

트루먼이 달라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상의 포켓에서 잘 다려진 흰색 손수건을 꺼내 내밀며 말한다.

트루먼: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누가 폭탄을 만들었는지가 아니고 누가 투하 명령을 내렸느냐요. 내가 내렸지.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요.

트루먼이 번스에게 손짓을 하고 둘 다 몸을 일으킨다. 나도 자리를 뜬다. 어색하다. 방을 나가는데 들리는 소리.

트루먼: 징징대는 애들은 이 방에 들이지 마.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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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각본집 | 크리스토퍼 놀란 지음 | 김은주 옮김 | 허블 | 308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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