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실비아, 살다' 박란주·주다온 인터뷰
美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응어리진 삶 표현
"희노애락 담긴 女 서사…힘들지만 희열 느껴"

"수십 년 동안 꽉 조여있던 벨트를 한 방에 풀어헤친 느낌이었다."(주다온) "방금 그 표현, 실비아 플라스 시 같았어."(박란주)


오는 16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실비아, 살다'에서 주인공 실비아 역을 맡은 박란주, 주다온 두 배우는 첫 공연을 마쳤을 때의 느낌을 이같이 표현했다. 부담스러운 역할이지만 그만큼 배우로서 느끼는 희열도 크다는 뜻이다.

'실비아, 살다'는 미국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삶을 소재로 한다. 플라스는 198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남편은 영국 계관시인 테드 휴즈. 같은 꿈을 꾼 캠퍼스 커플이었다. 플라스는 미국 보스턴 태생인데 스물세 살 때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휴즈를 만났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으로 보이지만 플라스는 서른한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역설적인 플라스의 삶은 할리우드의 구미를 당겼다. 2005년 플라스의 삶을 다룬 영화 '실비아'가 개봉했다. 귀네스 팰트로가 플라스를, 대니얼 크레이그가 테드를 연기했다. '실비아, 살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플라스처럼 좌절하지 말고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제를 전한다.


플라스는 거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기괴한 느낌을 주는 시를 많이 썼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마음산책)'을 사서 읽고 있다는 박란주는 "여성 시인의 시인데 거스러미, 도마뱀, 뾰루지 등 예쁘지 않은 표현들이 무척 많다"고 했다.

박란주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박란주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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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쁜 심장을 두 개로 찢어놓은 악마./그들이 아빠를 땅에 묻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지./스무살 때 나는 죽으려 했고/당신에게 다시, 다시, 다시 돌아가려 했지/뼈라도 되돌아가리라 생각했지./하지만 그들은 나를 자루에서 끄집어내어/접착제로 붙여놓았지>

공연 중 등장하는 이 시는 플라스가 1962년에 쓴 '아빠'라는 시의 일부다. 감정적이고 노골적인 표현들 탓에 플라스 생전에 그의 시는 아름답지 않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뒤늦게 인정을 받아 퓰리처상 수상자로 결정된 때는 그가 죽은 지 이미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스스로 삶을 마무리 지은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버겁지는 않았을까. 무엇보다 시인으로서 응어리를 풀지 못한 플라스의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지가 두 배우에게 가장 큰 난제였을 것이다. 일기가 실마리가 될 수 있을 듯 했다. 일기는 가장 내밀한 자기 고백의 글. 두 배우 모두 스스로 극한의 슬픔을 정리했던 적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경험이 실비아가 느꼈을 슬픔의 심연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박란주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플라스의 시가 때로 일기를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는 20대 중반까지 일기를 썼다. 다만 실비아처럼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썼는데 결과적으로 나를 위한 일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일기는 늘 선생님이 평가를 해줬고 그래서 누가 본다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또 일기장을 잃어버리면 누군가 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솔직하게 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박란주는 거침없는 플라스의 시가 여느 보통의 시와는 다르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여성 시인이 예쁘지 않은 글을 가감 없이 썼고 그게 가짜가 아니라 진짜를 써놓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다온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주다온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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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인 주다온은 지금도 일기를 쓴다. 그는 실비아처럼 솔직하게 일기를 쓴다고 했다. "욕도 쓰고 그날 기분을 있는 그대로 쓴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어떤 내용을 썼을까. 주다온은 "'힘들다'를 수없이 반복해서 쓴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실비아의 응어리진 감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공연은 극의 중심을 잡아야 할 주인공의 감정의 진폭이 여느 극보다 크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치닫는 극이 지나치게 무거워질까 봐 전반부에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유쾌한 장면들로 채웠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다. 두 시간 공연 중 실비아는 사실상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간이 없다. 다만 두 배우는 그렇게 힘든 역할을 표현하면서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는 희열도 느낀다.


주다온은 "이렇게 극한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 그런 것들이 배우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힘든데 힘든 것으로 끝나지 않고 희열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디션 때에도 짧은 순간 감정을 쏟아냈는데 그 자체로 배우로서 큰 희열을 느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데 신기한 것이 힘들게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음 공연이 또 기대된다"고 했다.


꽉 조여있던 벨트를 풀어낸 느낌은 그가 첫 공연을 마치고 일기에 쓴 표현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공연을 마친 뒤 잘 해냈다, 이제 다음 공연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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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주도 "보통 여자 배우가 다양한 희로애락을 느낄 만한 서사가 있는 작품이 많이 없다. 이 배역이 어쩌면 (배우로서)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박란주는 극을 통해 누구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주제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너는 필요하고 쓸모 있는 존재다라는 얘기를 실비아라는 인물을 통해 전달하는 극이다. 나의 하찮은 미소나 말 한마디 같은, 너무 소소한 것들이 누구에게는 큰 울림이 돼 힘을 줄 수 있다는 것, '나는 너무 평범해'라는 생각하는 관객들 모두가 나도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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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뮤지컬 '실비아, 살다' 공연 장면 [사진 제공= 공연제작소 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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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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