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훈희 일문일답 "7학년 2반에 받은 선물 같은 시간"
"최대한 깨끗하게 불러…수상에 일조한 것 같아 소름"

[박찬욱의 안개②]"시공간 초월한 노래…55년 전보다 더 짙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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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이봉조 선생님께서 적임자를 물색하시던 중에 눈에 띄었다. 열일곱 살 때다. 작은아버지(정근도)께서 악단장으로 계셨던 서울 그랜드호텔나이트클럽에서 노래했다. 아버지(정근수)께서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가르치셨다. 그랜드호텔나이트클럽에서 일한 건 1965년부터다. 이봉조 선생님께서 작은아버지께 ‘노래를 시켜봐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여섯 곡 정도를 불렀더니 ‘가시나, 쪼깐한 게 건방지게 노래를 잘하네’라고 하셨다. 이내 레코드판을 가져오시더니 익히라고 하셨다. ‘안개’였다.


-왜 주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당시에 ‘밤안개’의 현미 언니처럼 진득진득한 목소리가 유행이었다. 검질기고 끈기 있게 ‘안개’를 부르면 사랑이 희미해져 버린다. 이봉조 선생님께서 원하신 느낌은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다. 보슬비처럼 맑은 목소리로 노래해야 아련함이 살아날 수 있다고 보셨다.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라는 가사가 있다. 목적지가 어디라고 생각했나.

▲열일곱 살 소녀가 남녀의 사랑하는 마음을 어찌 알겠나(웃음). 나이를 먹으니까 사람마다 사랑하는 색깔이 다르게 보이더라. 누군가는 빨간색만 고집한다. 너무 힘들면 노란색이나 파란색에 눈길을 줘도 괜찮다. 이 노래처럼 안개 속을 걸어가도 상관없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색을 만날 수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슬픔이 깔려있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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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에 삽입된 ‘안개’도 같은 느낌인가.

▲박찬욱 감독에게 55년 전 목소리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더라. 있는 그대로 불러 달라고 했다. 안개가 더 짙어졌다고 생각한다. (송)창식이 형도 같은 생각일 거다. 성대결절을 두 번 겪고 목소리가 달라졌다. 노래를 못 하는 게 아니다. 각자 형편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진 거다. 노래에 진수나 정답이란 없다. 거칠면 거친 대로,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면 그만이다.

-오랜만에 혼성 듀엣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세월의 흔적이 깊게 묻었다. 예전처럼 곱거나 예쁘지 않더라. 사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마음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내용인데 예쁘게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호흡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창식이 형은 영화음악 등의 녹음을 반기지 않는다. 이번에도 몇 번이나 고사하길래 내가 직접 설득했다. (부산에서) 미사리까지 찾아가 영화계는 물론 가요계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호소했다.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가수다. 그런 예술가와 함께하는 작업은 나로서도 영광이다.


-박 감독이 녹음 전 따로 주문한 사항이 있었나.

▲‘안개’가 삽입되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 보여줬다. 오래전부터 이날을 기다려왔다면서(웃음). 최대한 깨끗하게 불렀다. 이 노래가 영화에 삽입된 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김수용 감독의 ‘안개’에서 내가, 두 번째는 이명세 감독의 ‘M(2007)’에서 보아가 불렀다. 정말이지, 좋은 노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하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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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남편(김태화)이 선견지명이 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이 노래로 1970년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월드 베스트 10’에 입상했다. 할머니가 돼서도 세계에서 관심을 받으니 감개무량하다. 수상에 조금이나마 일조한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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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랜만에 ‘안개’를 녹음해서 너무나 행복했다. 7학년 2반(72세)에 받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걱정됐는데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해줘서 고마웠다. 우리 가게(정훈희와 김태화의 꽃밭에서)에 놀러 오시면 크게 한턱내겠다(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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