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광고관리 규정
'소송 중인 사안', '중립성 훼손' 항목
인권위 "차별규정 삭제권고 수용 안한 것" 판단
"'중립'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라는 뜻 아냐"
"소수자 인권 증진할 수 있는 입장 취하는 게 '중립'"

서울지하철 시청역에 걸린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 추모 광고./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서울지하철 시청역에 걸린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 추모 광고./사진=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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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성전환 수술 이후 강제 전역된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 관련 광고물 게시를 불허했던 서울교통공사(공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광고 규정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권고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사는 7개월을 미룬 끝에 변 하사의 광고 게재를 승인하긴 했으나,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최근 공사가 회신한 내용에 대해 논의한 결과,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변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지난해 8월 변 하사 복직 촉구 광고를 서울지하철에 게재하려 했으나 성소수자여서 불허됐다는 진정을 접수했다.

당시 공사 광고심의위원회는 불허 이유로 '소송 중인 사안이므로 공사의 정치적 중립성 방해가 우려된다'는 점과 '성정체성과 관련해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등 광고관리 규정의 '체크리스트 평가표'를 근거로 제시했다.


인권위는 공사가 제시한 근거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사례가 없도록 해당 규정을 개정 또는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공사는 지난 1월 기존 체크리스트에서 해당 항목을 삭제하고, '소송 등 분쟁과 관련 있는 사안에 대해 다루고 있는가', '공사의 중립성 및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가' 항목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개정 중이라고 회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신설되는 항목이 오히려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다. 소송과 관련한 사안이라면 광고 내용이 무엇이든 게재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공사가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며 "성소수자를 포함하여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고(故)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고(故)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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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하사의 광고는 공대위가 게재를 신청한 지난해 8월 이후 7개월이 흐른 지난달 25일에서야 지하철역에 걸릴 수 있었다. 공대위의 광고 심의 요청을 두 차례나 불승인 결정한 공사는 지난 1월 공대위가 세 번째 광고 심의를 요청한 끝에 변 하사 광고 게재를 승인했다.


변 하사의 광고는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과 1·2호선 시청역, 2호선 신촌역에 이달 24일까지 한 달간 게재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사 측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관련 광고를 게재하는 데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공사는 앞서 세월호 참사 추모, 페미니즘 관련 광고 등 또한 게재 불허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전문가는 국가·공공기관이 '중립'이라는 개념의 정의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 소장은 "공사가 새로 신설하겠다는 두 항목은 기존 규정과 다를 것이 거의 없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공사를 비롯해 많은 국가 기관이 '중립'이라는 개념을 왜곡해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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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립이라는 것은 '어느 곳에도 편들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받는 문제에 관해서 공공기관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을 보고하고, 인권을 증진할 수 있는 방향의 입장을 보여야 한다"며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피해자 또는 가해자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것은 중립을 잘못 해석한 것이고, 그건 곧 중립이 아니라 기득권의 편을 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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