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 '이동권 보장' 촉구 시위 벌여
'교통약자법' 통과됐으나 예산 지원은 '임의조항' 불과
지자체 예산 부족하면 저상버스 전환 차질 빚을 수도
일반 버스보다 2배 비싼 저상버스…국가 보조금 지원 필수
단체 측 "장애인 권리, 국가 책임 강화해야" 촉구

지난 2016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프리미엄 버스에 탑승을 시도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프리미엄 버스에 탑승을 시도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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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3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휠체어에 탄 사람들이 열차 승강장 앞에 섰다. "장애인 권리 보호", "예산없이 권리없다", "기획재정부 책임촉구" 등 문구가 쓰인 팻말을 끌어안은 이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 활동가들로, 시민들의 퇴근길에 불편을 줄 것을 감수하고 이번 시위를 벌였다. 활동가들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이동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정부를 향해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예산을 확정하라"고 촉구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수월한 이동을 위한 조처를 담은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통과됐으나, 장애인들의 항의는 거세지고 있다. 중앙 정부의 예산 지원이 미흡해 '저상버스' 도입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을 확대하는 교통약자법은 지난달 31일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앞으로 새로운 대중교통 버스를 도입할 때 휠체어의 출입이 쉬운 '저상버스'의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장연 측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예산 조항이다. 교통약자법은 저상버스 도입,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을 지원하도록 중앙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만, 문제는 예산 지원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임의조항은 당사자가 법의 규정과 다른 의사를 가지고 있을 때, 법이 아닌 당사자의 의사를 우선하는 규정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조희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는 3일 시위에서 "예산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는 '돈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마친뒤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3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마친뒤 열차에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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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는 실내 바닥이 낮은 버스를 의미한다. 기존의 버스는 차체 밑부분에 엔진을 탑재해 바닥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저상버스의 경우 엔진 시설을 천장으로 옮겨 바닥을 낮추는 설계가 특징이다. 이 방식을 통해 버스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없앰으로써, 키가 작은 어린이나 보폭이 좁은 임산부, 휠체어에 탄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상당수의 저상버스는 휠체어용 공간, 버스 실내와 땅을 이어주는 자동 리프트 등 전용 시설을 탑재하기도 한다.


문제는 일반 버스에 비해 훨씬 높은 비용이다. 차체를 낮추고 장애인 친화 시설을 설치해야 하다 보니 비스포크(bespoke·맞춤 제작) 부품이 늘어난 탓이다.


통상 버스의 가격은 주문 대수, 옵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구매 비용을 추산하기 힘들지만, 지자체 자료를 보면 일반 버스와 저상 버스의 가격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휠체어 이동용 리프트가 설치된 저상버스의 예. / 사진=연합뉴스

휠체어 이동용 리프트가 설치된 저상버스의 예.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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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서울시가 발표한 '시내버스 표준원가에 따른 운송비용 정산지침'을 보면, 일반 중·대형 버스 기준가격은 약 1억1000만~1억2300만원을 기록했다. 반면 저상 버스 기준가격은 2억~2억1200만원에 달해, 거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즉, 그동안 일반 버스를 운용하던 버스 운송업체가 저상버스로 전환하려면 최소 9000만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이를 감당하려면 교통요금을 늘리거나, 정부·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다.


실제 재원이 풍부해 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대도시들은 상당수의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일례로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18년 기준 일반 시내버스의 44%인 3112대를 저상버스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까지 저상버스 비율을 81%로 높이고, 오는 2025년에는 모든 일반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반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지방 도시나 농촌에서 저상버스 도입은 요원한 상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월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8.4%에 불과했다. 강원(35.9%), 대구(34.5%), 대전(31.5%) 등 지역들도 40%를 넘지 못했다. 충남 같은 경우는 저상버스 보급률이 10%에 불과해 지역 내 버스 10대 중 1대꼴로 저상버스가 운영됐다.


저상버스의 리프트를 이용하는 모습. 저상버스는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에 매우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 사진=연합뉴스

저상버스의 리프트를 이용하는 모습. 저상버스는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에 매우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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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또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호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A씨는 "영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 여행 갔을 때 거의 모든 버스에 계단이 없더라. 비장애인들에게는 사소하게 보이는 이런 요소가 장애인들의 외출을 막는 벽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장애인 인권에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야 진짜 선진국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회사원 B씨(31)는 "서울 같은 대도시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해도, 지방은 정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지방 도시들은 버스나 자가용 없이 이동 자체가 매우 힘든 곳들도 많다. 그런 곳에서는 장애인들이 사실상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단체는 저상버스를 감당하기 힘든 지자체를 대신해 중앙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며 촉구하고 나섰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지난달 20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서울 자택에서 시위를 벌이고 "누구든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받지 않는다는 법 조항이 있다. 교통 약자는 안전하고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법도 있다. 그런데 이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라고 규탄했다.


이어 "동정받으려고 지하철을 점령한 게 아니다. 우리도 비장애인들처럼 당당하게 지하철을 타고 싶다"며 "그런데 버스는 저상버스가 부족하고, 지하철은 위험한 리프트를 타야 한다. 이것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기재부 장관 탓'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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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 정책들은 장애인 단체의 오랜 숙원이었다"며 "장애를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해온 국가의 무책임을 철폐하고 국가 책임 강화를 통해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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