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착한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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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며칠 전 일이다. 최문순 강원도 지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민들을 위해 감자를 판다며 '감자 파는 도지사'로 계정 이름을 바꾼 뒤 호기심에 관련 사이트에 들어갔다. 10㎏들이 한 상자에 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보통 오픈마켓 택배비가 2500~3000원 하니 감자 10㎏이 2000원 정도인 셈이다. 잠시 후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이미 모든 수량이 매진됐다.


다음 날 아내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생각이 나 얘기를 했더니 네이버 스토어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어 한 박스 구매에 성공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역시 매진이었다. 운 좋게도 강원도청에서 자체 서버가 폭주해 운영이 불가능하자 네이버로 판매처를 바꿨는데 바꾸자마자 구입에 성공한 것이다.

이날 이후로 지금까지 강원도 감자를 판매하는 '강원 마트'에는 전쟁터가 벌어졌다. 무려 100대 1의 경쟁률,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1분 만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포케팅'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포테이토와 티케팅을 더한 신조어다.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판매된 감자는 총 7만8000상자, 780t에 달한다.


주말에 배송온 감자 박스를 뜯었다. 제법 크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아이 주먹만한, 작고 동글동글한 감자와는 다르다. 돌덩이처럼 큰 놈부터 감귤 크기까지 다양하다. 대충 흙을 털어낸 감자 일부에는 상처도 나 있다. 흙을 깨끗이 씻어낸 뒤 오랜만에 감자칼을 꺼내 가족이 나란히 앉아 감자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역시 10㎏이나 되다 보니 양이 많다. 잠시 후 감자 일부는 찜통으로, 일부는 믹서로 갈아 옹심이로 만들어 냉동실로 향했다.

산더미처럼(그 정도는 아니지만) 쌓여 있는 감자를 바라보며 아내가 뿌듯해한다. '감자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재미는 물론 택배비를 제외하면 2500원 정도에 10㎏이나 되는 감자를 구매했다는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착한 소비'를 했다는 즐거움이다. 별것 아닌 소비지만 우리 농가를 돕는다는 의미를 더해 '착한 소비'가 됐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함께 감자 껍질을 벗기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유통업계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로나19 유행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본격화되고 재택, 개학 연기 등으로 급식시장이 무너져 농수산물 소비 역시 크게 줄었다. 사과 값 역시 2010년 이후 최저 가격까지 떨어졌다. 생산량은 크게 늘었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소비는 줄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간의 하자가 있는 '못난이 사과'는 땅에 묻힐 판이다.


백종원씨와 함께 '못난이 감자'를 팔아본 적 있는 이마트는 전체 사과 물량의 30%에 달하는 '못난이 사과'와 흡집이 있는 제품들을 싸게 판매했다. 사과 농가도 돕고 저렴한 가격에 과일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몰리며 역시 모두 판매됐다. 일반 딸기보다 30~40% 크기가 작은 '구슬 딸기'도 이전에는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며 외면당했지만 "딸기잼 등으로 쓰기에는 맛있다" "아이들이 먹기 좋다" "딸기 농가를 도울 수 있다"는 착한 소비 스토리가 더해지며 역시 완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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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착한 소비' 열풍은 우리 농가에 잔잔한 희망을 주고 있다. 강원도에 이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일제히 농산물의 착한 소비를 지원하고 나섰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상품성이 없다고 묻어 버리던 농산물들을 팔고 지자체들은 택배비, 판매 사이트 운영 등을 맡고 있다. 소비자 혜택이 가장 크다. 우리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착한 소비'는 소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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