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제주도 특수성 주목해 다양한 이야기 써내려간 문학인
이념 싸움의 상처 치유하며 휴머니즘과 사실주의 구현

4·3사건 아픔 달래고 진실 다가간 소설가 현길언 별세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제주도의 역사와 그 주민들의 삶을 들려준 소설가 현길언씨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고향인 제주도의 특수성에 주목해 다양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용마의 꿈(1984)’은 민족의 보편적 비극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제주도에 전하는 민간설화를 모티브로 한다. 제주목사와 강좌수의 대립으로 중앙권력과 토착세력 간 갈등을 조명한다. 선량한 토착세력을 제거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용마를 탄 장수가 나타날 거라는 굳은 믿음을 심어준다.

‘그믐밤의 제의(1987)’는 제주도 설화를 소설화했다. 현씨는 전설과 제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장수의 출현을 신앙으로 삼는 인물을 등장시켜 용당개 전설이 우리 삶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미를 강변한다.


‘귀향(1982)’과 ‘우리들의 조부님(1982)’, ‘먼훗날(1984)’ 등은 제주도민 가슴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4·3사건의 상처를 다룬다. 현씨는 생전 인터뷰에서 “4·3사건은 내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체험만 아니라 오랜 기간 현장 취재와 자료 조사를 해왔다”며 “역사적 사건이란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 이를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한 학술계간지에 ‘과거사 청산과 역사 만들기: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라는 글을 썼고, 이듬해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이라는 책도 냈다. 현씨는 당시 4·3사건을 “의로운 저항이나 봉기가 아니라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고 정의했다.


소설에서는 4·3사건과 이데올로기라는 이름 앞에 간과되는 개인의 진실을 밝히는데 천착했다. 역사나 이데올로기를 ‘껍질’, 인간의 진실을 ‘속살’에 비유한 ‘껍질과 속살(1986)’이 대표적인 예다. ‘신열(1984)’에서는 역사 속에 묻힌 개인의 왜곡된 진실을 파헤치기까지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허위와 조작을 폭로하며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한다.


개인의 삶을 드러내고 역사적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자세는 ‘닮아지는 세월(1987)’, ‘벌거벗은 순례자(1999)’, ‘나의 집을 떠나며(2009)’ 등에서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현씨는 이념적 싸움의 상처를 치유하며 휴머니즘과 사실주의를 구현한 작가로 평가된다.

AD

현씨는 한양대와 제주대에서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다수 문학이론서와 인문문화 서적을 펴내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해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녹색문학상, 백남학술상, 제주문학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은 13일 오전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