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하나도 없다. 미국으로 오기 전 짐을 쌀 때 마스크를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1월 중순 마트에 가 마스크를 사려고 했는데 바로 앞에서 한 사람이 마스크 두 박스를 사 가고 끝. 지금까지 아예 수급이 안 되고 있다. 세정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느긋한 사이 중국 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한국으로, 다른 나라로 확산되었다. 신천지는 새로운 땅이 아니었고, 난데없는 마스크 대란이 났다. 그나마 차분히 대응 중이라는 소식에 안도한다.
필자가 머무는 미국 서부 지역에도 여행 이력 없는 지역 감염자가 나왔고 주의 경보가 높아졌다. 중국과 한국,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100개국에서 코로나 감염이 10만 건을 돌파하니 세계 보건기구에서는 팬데믹의 위험이 크다고 발표했다. 다만 통제 가능한 첫 팬데믹이 될 거라는 조건과 함께. 궁극에는 통제되고 극복되겠지만 그 사이 치러야 할 수많은 희생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도 두렵지만, 더 무서운 것은 불안과 두려움, 공포, 상호 비난과 혐오의 무한 전파다. 두려움은 불확실성에서 나오고 이기심 속에 증폭된다. 이 두려움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세력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가짜뉴스를 만들어 뿌려댄다. 그럴수록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방역과 점검, 치료에 앞장서느라 과로하는 분들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정보를 공유하며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에 찬사를 보내며, 낯선 땅에서 재난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함께 바라본다.
앞으로의 세계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출현과 재난이 일상이 될 세계다. 국경도 소용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이를 상상하고 대비하는 일을 앞으로 모든 정치적 현실과 우리 각자의 숙제로 던져주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일들이 일상이 되고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 재난 한가운데 서는 일. 계층과 계급에 따른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 영화 속에서도 벌어지고,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지혜와 합리적인 판단, 고통 분담의 의지 속에서 재난영화의 주인공들은 마침내 살아남는다. 영화의 엔딩처럼 지금 현실도 얼른 끝이 나기를 바라는데. 시선을 바꾸어 생각하면 여기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궁금하다. 인간인가, 병원체인가, 카메라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 곳 버클리에는 봄꽃이 한창이다. 지구에서 인간이야말로 나약하고 불완전한 하나의 종에 불과하고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종임을 절감하며 햇살을 향해 옹기종기 모여 일제히 고개 드는 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꽃이 다 부럽다. 각자도생의 사람살이를 생각하니, 인간이 다른 종들과 함께 점유한 이 지구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싶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제대로 상상하는 일은 상생에 대한 발본적인 반성을 필요로 한다. 그 상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 아닌 동식물들, 온갖 미생물과 바이러스들과의 일이다.
지금의 위기는 인간 중심의 문명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 하여 인간의 자리를 겸허히 내려놓고 생각해본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줘야 하나. 다 같이 숨 쉬고 살아갈 지구. 공포와 배제, 차별과 이기심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상생의 길. 그를 위해 우리 각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마스크가, 멀어지는 거리가 쌀보다 더 중요해진 낯선 세계에서 꽃이 부럽다 말하려다 쓴다. 우리는 이 재난을 통과하며 무엇을 배우고 있나.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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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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