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시행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즉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또한 17일부터는 구인자가 구직자 본인의 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 구직자 본인의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재산, 구직자 본인의 직계존비속 및 형제자매의 학력, 직업, 재산 등을 인사 기초자료로 수집하는 것을 금지하는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특히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직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입법 목적은 충분히 타당하다. 또한 외부 압력에 의한 채용 비리,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채용 과정에서의 최소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채용절차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입법 목적 역시 존중돼야 한다.
다만 달리 보면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국에 신고하는 경우 오히려 정상적인 업무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결국은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고, 구직자의 신체적 상황이나 혼인 등에 대한 정보가 해당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이를 차단당하는 불합리는 없을지 의문이다. 결국 이 이슈는 상식과 도덕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문제에 강제 규범인 법이 성급히 개입하는 것은 아닌지, 사회의 자율성과 자정 능력을 불신하고 국가가 법으로 관여하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아닌지, 즉 법의 과잉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현재 법제처 법령정보센터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4976건의 법률과 명령, 1만6457건의 행정규칙, 10만9676건의 자치법규가 존재한다. 또한 20대 국회는 임기가 아직 1년 정도 남았지만 2만560건의 법안이 제출돼 그중 5674건이 가결됐다. 연평균 1419건으로 하루 3건 가까운 법률이 새로이 제정되거나 개정되고 있다. 이런 법령에 규정된 형벌 규정으로 2016년 1월 기준 15세 이상 국내 인구 4450만명의 26.1%인 1163만명이 전과자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법령에 기인한 가장 큰 피해는 법이 본래적으로 가져야 할 수범자의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수범자인 국민이 어떤 법이 존재하는지, 어떤 법을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을 몰라도 법을 위반하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항상 법적 제재의 위험에 놓여 있다. 결국 법의 과잉은 법이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위의 표준이 되는 규범으로서의 역할을 못 하게 한다.
원래 성문법은 법의 존재와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행동을 하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국가 권력의 전횡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도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법의 과잉이 있는 경우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행정규제법도 마찬가지다. 4400여건에 이르는 행정법규에 기인한 기업들의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외쳐온 규제 개혁이 왜 필요한 것인지는 상론이 필요하지 않다.
최근 정부가 법 집행의 원칙이나 기준이 되는 기본법이 없는 행정 분야에 행정기본법을 제정해 법 집행의 통일성과 형평성을 기하고 혁신 성장을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신선해 보인다. 다만 더 나아가 통합기본법의 제정으로 불필요하게 된 개별 법령의 축소, 폐지까지 검토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 입법 절차와 달리 규제 심사를 거치지 않는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서도 국회 내 전문 기관을 신설해 규제 심사를 진행함으로써 과잉 규제 입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옐리네크의 말이나 '형식은 자의의 적이 아니라 자유의 적'이라고 한 파비오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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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 사이버법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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