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unter]우즈강(江)의 울프
버지니아 울프 탄생 137주년, 장석원 시인이 쓴 그녀의 이야기
1882년 오늘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Stephen Woolf)가 탄생한 날이다. 그녀는 1941년 주머니에 돌을 집어넣고 우즈강에 투신한다. 3월 28일, 11시 45분. 그녀의 시계가 멈춘 그때 이후로, 세상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대명사를 사용하는 순간 고유명사는 증발한다. 결혼 후 그녀가 얻은 성(姓) '울프'를 인칭명사로 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남녀 혼성도 배제도 아닌 이질적으로 복합된 전체성"(이병욱, 2003)을 가진, 영화 '올랜도'로 집약되는, 사람(Woolf)―울프(wolf).
울프는 우즈강을 쳐다본다. 울프는 물이 되려고 한다. 물로 돌아가 시원(始原)에 도달하려는 울프. 구름으로 비로 변전하여 바람과 함께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울프. 영원한 순환 속에서 죽음도 삶도 거부하는 울프. 물로 들어간다. 조금씩 물에 먹힌다. 지워진다.
울프가 최후의 산책을 시작했다. 봄 나무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낮고 흐린 해가 느리게 산개한다. 초록이 돌아오고 있다. 생명이 귀환한다. 울프는 잿빛. 울프의 눈이 붉다. 울프는 피의 냄새를 알지 못한다. 울프는 뜨거운 몸을 안은 적도 낳은 적도 없지만, 울프의 심장은 찬연한 적(赤)으로 맹렬하게 달아오른다. 스스로를 처벌하기 위해, 드디어, 자유롭게 항해하기 위해, 물에 녹아들기 위해, 물로 다가서는 울프. 집을 나서기 전 울프는 남편 레너드에게 편지(유서)를 썼다.
"당신은 최대한으로 가능한 행복을 내게 줬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에게 내 인생이 모든 행복을 빚졌다는 점이에요."
살아서 복귀 못한 울프의 육신 대신 남겨진 육필(肉筆) 한 장. 울프는 유언장에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요, 같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레너드는 울프가 남긴 최후의 편지를 읽는다. 시간이 멈춘다. 울프와 만난 순간부터 울프가 죽음으로 건너가기 위해 걸었던 그 길 끝까지,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다. 레너드의 기억이 파열된다. 레너드는 전율한다.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두고 불귀의 물이 되어 흘러가버렸다. 레너드는 울프에게 말한다.
"누군가 나를 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문장의 주인은 울프이다. 울프와 레너드의 사랑에는 육체가 없었다. 영혼뿐인 사랑이었지만, 레너드는 울프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 눈물 마른 통곡에 젖었을 것이다. 레너드가 독백한다.
"나는 우리보다 더 행복했을 그 어떤 두 사람의 존재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레너드가 읽는 이 문장이 울프가 남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울프는 편지의 끝에 자신의 이름 첫 글자 'V'를 남겼다. 저 문자는 울프의 발자국이다. 울프는 아팠다. 부모의 부재, 의붓오빠의 성폭력, 친오빠의 급사(急死) 같은 생의 고통과 평생 맞서 싸웠다. 울프는 느리게 걸었다. 울프는 흘러가는 모든 물결의 수효를 헤아린다. 물의 온도와 밀도를 실어오는 바람을 흡수한다. 울프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끝이 시작되고 있다. 물이 제 몸을 연다. 물이 울프를 끌어안는다. "나는 가만히 있지만, 흐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호명한 박인환. '목마와 숙녀'에 초대된 울프. 감상성, 염세주의, 대중성 같은 단어로 얼룩졌던, 김수영의 맹렬한 비난의 표적이었던, 박인환이 한국전쟁 이후에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인환이 울프의 작품을 탐독했고, 그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목마와 숙녀'가 울프의 '등대로'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방민호가 제기했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증거가 없기에 사실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 폭력의 상처 속에서, 사랑의 부재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문학으로 스스로를 견뎌낸 울프.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서 존재의 궤멸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박인환.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할 수밖에 없었던 박인환의 감정 노출을 비난하는 순간, 타자의 감정을 언어 예술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절망과 회의가 끓어오른다.
박인환이 사용한 단어 "거저"가 품고 있는 감정의 폭풍. 삶과 죽음이라는 주체의 실존 앞에 불쑥 터져 나온 "거저"는 역사와 '나'의 대결 과정에서 주체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국의 시인이 겪어야 했던 거대한 역사와 왜소한 '나' 사이의 분열이 주체의 파멸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인환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한 잔의 술"로 위로하고, 취해, "인생은 외롭지도 않"다고 말했지만, 그는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울프는 사랑받지 못했으나, 희생적인 남편을 만났고, 레너드는 평생 울프를 사랑했다. 사랑이 울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낫게 했을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레너드. 독일이 영국을 침공하면 동반자살하기로 울프는 레너드에게 약속했다. 박인환은 29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실체에 몸이 저릿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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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사라지고 있다. 울프를 삼킨 물 위에 구름이 얼룩진다. 아직 새싹이 피기 전이다. '도착지가 상관없는 여행'(The Journey Not the Arrival Matters, 버지니아 울프 사후 29년에 나온 레너드의 책)이 시작되었다.
장석원 시인ㆍ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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