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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대충'써서는 안 될 말들

최종수정 2020.02.11 15:43 기사입력 2017.07.27 14:35

김덕수(정산 鼎山)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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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한 사회나 국가에서 유행하는 언어를 고찰해 보면 곧 그 당시의 사회와 국가 구성원들의 의식과 가치체계 그리고 풍속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동아시아문명권에 속하면서도 문자(文字, 요즘은 漢字라고 함)와 한글이라는 독특한 언어체계를 병용 발전시켜 왔습니다.

인류사에서도 독보적 위상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표현의 섬세함은 물론이거니와 깊은 학문적 사유를 가능케 합니다. 비속어에서부터 고도의 심성적 수양을 요구하는 선비들의 철학적 전문용어까지 모두가 이치에 부합하는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언어생활에 이치가 전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얼토당토 않는 표현들이 정착해 언어생활의 혼란을 초래하고 정신문화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용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적당히 해라, 대강해라, 대충해라, 요령껏 해라, 요령을 피우다….’ 그 어원을 떠나서 이제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니라 꼼수나 편법을 동원해 올바른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해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의미들로 전락된 말들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억지로 병탄하고 조선인의 정신까지 말살하기 위해 조선은 유교와 선비들이 망쳤다는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왜냐구요? 나라가 망해도 끊임없이 뜻있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물질로 유혹해도 굴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들이 조선땅 곳곳에 산재해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었습니다. 유교의 학문적 토대와 그 학문을 몸으로 체득한 선비들이 존재하고서는 그들의 의도는 실패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계적이며 의도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선발작업이 학문을 이루고 도를 완성하는 데 쓰여지는 학문적 용어들의 폄하입니다.
‘적당(適當)’은 무엇인가. 인간이 학문을 완성하고 인격을 함양해 온전한 자유인이 되어 삶에 임했을 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때에 맞게 합니다. 이것을 시중(時中)이라고 합니다. 적당하다는 것은 이 경지를 말합니다. ‘대강(大綱)’은 일의 큰 줄거리를 잡은 것을 의미하며 ‘대충(大衷)’은 나의 온 속마음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요령(要領)’은 일의 핵심처를 말하며 요령을 터득했다는 것은 도의 큰 줄기를 몸으로 파악했다 곧 대체(大體)를 깨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더욱 정밀하게 절차탁마해 가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학문과 수도에 있어 정말 요긴한 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정말 좋은 일을 두고도 ‘기(氣)가 막히게 좋은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기가 막혔다가도 좋은 일을 당하면 기가 통(通)하고 뚫리게 됩니다. 이치가 그렇습니다. 너무나 작위적인 표현들이 한 세기 이상 반추 없이 생활화되어 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청천백일하에 가능할 수 있나요?

‘반려(伴侶)동물’이라는 말들이 방송매체에 일반화 된 지 오래입니다. 애완동물들을 많이들 키우면서 상술에 의해 생긴 웃지 못할 표현입니다. 반려라는 말은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에 배우자를 지칭하는 귀한 말입니다. 나의 반과 배우자의 반이 합쳐 온전한 부부의 한 몸을 이룬다고 해서 인륜 중 가장 친밀한 사이에 쓸 수 있는 말을 함부로 짐승과의 사이에 쓴다는 자체가 섬뜩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요즘은 환갑, 진갑 넘어 칠십이 넘어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지칭할 때 엄마 아빠라고 버젓이 씁니다. 이 말은 젖 먹던 시절 쓰는 옹알이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머니, 아버지로 칭하게 했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가 없어진 세상입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다음 자라나는 세대의 귀감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김덕수(정산ㆍ鼎山)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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