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주고 물건 사면 호갱님"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직장인 김현모(33)씨는 백화점에서 정가에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 큰 마음을 먹고 100만원을 웃도는 무스탕 자켓을 구매한 뒤 아내와 함께 간 김포 아울렛에서 똑같은 옷이 40만원에 판매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구입할 때만 호갱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똑같은 옷이 반값 이하로 판매되는 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특히 백화점 의류는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관행이 박힌 품목 가운데 하나다. 수년 간 이어진 경기 침체 영향으로 내수소비가 둔화되면서 패션업체들은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신상품조차 출시한 지 한달 만에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유통업체의 아웃렛 출점도 늘면서 소비자는 정상가보다 싼 제품을 손쉽게 구입한다.
국내 의류시장에서 정상가에 판매되는 의류는 전체의 30% 수준이다. 백화점을 비롯한 1차 유통시장에서 20~30% 할인 행사를 통해 물량이 소진된다. 아웃렛, 상설할인매장 등 2차 유통시장으로 넘어가 최대 80~90%까지 할인된다. 2차 유통시장에서 팔리는 의류 물량은 60%에 달한다.
옷값이 원가보다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는 배경에는 유통구조가 있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 내는 수수료, 재고관리, 제조·유통단계별로 발생하는 거래비용 등을 가격에 반영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백화점 판매수수료는 22%에 달했다. 판매수수료는 백화점 등에 입점한 업체가 유통업체에 판매가격 일부에서 떼어주는 금액으로, 1만원짜리 제품을 팔 때 백화점은 2200원을 챙긴다는 의미다.
여기에 판매사원 인건비, 매장 운영비, 인테리어비 등도 입점업체가 내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률은 50%를 넘는다는 분석이다. 공정위 조사에선 납품업체들이 부담해야하는 인테리어비·광고비 등 추가비용은 매장당 약 300만원씩 늘었다.
유통업계의 할인행사가 연중 상시화하면서 유통구조에 거품이 만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박리다매로 재고를 소진하는 효과와 함께 마진은 줄이되 판매액과 이익을 늘리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지만 소비자 불신을 야기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일은 경기 침체 등으로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리는 효과도 있지만 지나치게 길어지면 오히려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가져온다. 연일 계속되는 할인 행사는 소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체감 할인 폭은 점차 낮아져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잦은 할인 행사는 정상가에 사면 손해라는 인식도 심어줘 원가가 턱없이 높다는 '소비자 불신'과 정상가격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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