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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마저 세탁했나…옥시, 유해성 자료 무더기 삭제·인멸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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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최대 가해기업으로 지목되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이하 옥시)가 피해자 구제에는 소극적이면서 형사처벌을 면하려고 갖은 '꼼수'를 동원한 정황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행태로 공분을 사는 이유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 측이 검찰 강제수사에 앞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성분의 유해성 및 내부 논의 내역 등이 담긴 자료들을 무더기로 폐기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2월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 압수수색 과정에서 원료성분 공급자가 제공해 온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옥시 측이 통째로 폐기 또는 삭제한 사실을 확인했다.
옥시는 2001년부터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만들어 팔면서 제품에 함유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인산염 성분을 제조한 SK케미칼로부터 MSDS를 함께 받았다. MSDS는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관리를 위해 제조자명, 제품명, 성분과 성질, 취급상의 주의점이나 사고시 응급처치법 등이 담긴 자료다. SK케미칼은 공급 성분을 유해물질로 분류하고 흡입 독성 등에 대한 경고를 담은 MSDS를 옥시 측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옥시 측이 제품 출시 이후 2011년 보건당국의 제품 수거 및 판매중단 명령 시점까지 10년치 유해성 관련 자료를 통째로 없앤 정황을 일부 포착하고, 사전에 제품의 유해성을 알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옥시 영국 본사가 한국법인의 관련 제품 출시 때 PHMG 성분의 사용을 승인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옥시 내부에서 보건당국 및 수사기관의 동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담긴 자료들이 검찰 압수수색을 앞두고 일괄 파기되는 등 증거인멸에 나선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최대 가해기업으로 꼽힌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임산부, 영유아가 잇달아 폐 손상으로 숨졌다. 사건이 공론화 된 이후 2013년 국회가 통과시킨 피해자 구제 결의안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는 1997년 최초 출시 이후 2011년까지 60만개 이상 팔렸다. 2001년부터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옥시는 2011년 보건당국이 제품 수거에 나서기까지 10년간 시장점유율 1위였다. 피해자 측은 전체 사망자 146명 가운데 70%가 옥시 제품을 쓰다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시기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등을 판매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 사과·보상 의사를 밝힌 것과는 대조적으로 옥시는 대외적인 입장 표명을 피하고 있다.

대신 형사책임을 면하려 한 정황만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보건당국이 문제 제품군과 피해자 폐손상 사이의 인과관계 추적에 한창이던 2011년 12월 옥시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변경 설립 등기를 했다. 조직 변경이란 회사가 법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관련 법령 및 판례에 따르면 조직 변경이 이뤄진 법인에게 앞서 소멸한 법인의 형사책임이 대물림되지 않는다. 주주ㆍ사원, 재산, 상호는 그대로 남았지만 책임을 따져 물을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판매한 '법인'은 제도상 이미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2014년에는 아예 이름에서 '옥시'를 떼어내고 영국 본사 이니셜을 딴 'RB코리아'로 간판까지 바꿔 달았다. 보건당국의 유해성 검토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자사 입맛대로 실험 조건과 결과를 추려낸 실험보고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하거나, 자사 홈페이지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고객 민원글을 삭제하는 등 사건 축소·은폐 시도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이 인지했는지 여부를 포함해 제조·유통 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한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전날 옥시의 인사담당 김모 상무를 소환해 2001년 이후 제품 제조·판매 관련 의사결정 및 보고체계를 확인했다.

검찰은 경영진을 차례로 소환해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묻는 한편 잇따라 불거진 증거인멸 등 형사책임 회피 시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단서가 드러날 경우 '윗선'이 어디까지인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국 레킷벤키저 본사로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다. 레킷벤키저는 2001년 4월 동양화확그룹 계열사였던 옥시의 생활용품사업부를 인수해 옥시레킷벤키저를 설립했다. 이미 피해자들은 지난해 영국 본사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검찰이 부를 최고위 인사로는 우선 신현우 전 대표(68)가 꼽힌다. 신 전 대표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팔기 시작한 2001년 전후 회사 대표를 지냈다. 검찰은 수사 착수 이후 신 전 대표를 비롯 외국인 등 옥시 전·현직 임원 10여명에 대해 무더기 출국 금지 조치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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