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철학의 실종
朴대통령 중남미 순방일정에도 자원관련 계획 전무…올 정부예산 반토막
"정권 바뀌면 성완종 꼴 날텐데…누가 줄서랴" 기업들 노이로제
미래먹거리 위한 정책의지와 원칙은 유지돼야…환부 가리는 수사 절실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정치적 논리에 휩싸이면서 표류하고 있다. 일부 투자실패와 비리 의혹 등 문제에 매몰돼 세계적 자원확보 경쟁에서 뒤쳐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저유가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측면에서, 현 정부가 자원외교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5일 청와대에 따르면, 16일부터 시작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 일정에 자원개발과 관련된 의제설정이나 공식일정 등 정부 차원의 사업추진 계획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관계자는 "중남미에는 주로 동이나 아연 등 광물이 많은데, 모두 수입해 쓰는 데 문제가 없는 것들"이라며 "그간 부실한 투자가 많았다는 지적도 있고 해서 관련된 일정은 전혀 잡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4∼5년 전 청와대의 상황인식은 전혀 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08년 브라질ㆍ페루 등 남미순방의 화두는 단연 자원외교였다. 청와대는 남미의 광물ㆍ석유ㆍ바이오연료와 한국의 플랜트, 조선, 자동차ㆍ녹색산업을 융합하는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당시 자원외교 특사로 활약했던 이상득 의원도 브라질ㆍ페루ㆍ볼리비아 등지를 수차례 방문하며 남미에 공을 들였다. 남미가 자원부국이란 사실은 그대로지만 우리가 남미를 바라보는 시각은 불과 5년여 만에 전혀 딴 판이 돼 버린 것이다.
국가적 최우선 프로젝트의 몰락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정부의 정책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인 '에너지자원 특별회계 중 해외 자원개발사업예산'은 2014년 6391억원에서 올해 3594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한국석유공사에 대한 유전개발사업 출자도 같은 기간 1700억원에서 570억원으로 66% 줄었다. 지난해 국회는 한국석유공사의 셰일가스 신규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해외 자원개발은 장기적 전략을 갖고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공기업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석유공사ㆍ가스공사ㆍ광물자원공사 등이 대표적 자원개발 공기업들인데,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공기업 부채 구조조정과 예산삭감이라는 바람 속에 신규 자원개발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전(前) 정부의 자원외교에 앞장섰던 기업들 역시 현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하고 있다. 현대 등 대표 기업들이 자원개발부서를 없앤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ㆍ현 정부의 기류가 이렇게 달라진 데는 석유가격 하락에 따른 광물가격의 안정세가 한몫했다. 광물 생산국이 '갑(甲)'이던 시장도 물건을 사는 국가가 우위에 서는 형태로 바뀌었다. 박근혜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은 것은 전 정권과의 차별화라는 정치논리 외에도 이런 시장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 상황판단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전략연구실의 김대형 박사는 "단순 자원수입과 개발참여 등 단기ㆍ장기적 자원확보 포트폴리오를 꾸려야 한다"며 "현 정부가 자원개발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자원확보'라는 중장기 전략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석유ㆍ광물가격 안정세가 지속될 올해부터 내년 초까지가 자원개발 투자의 최적 시기"라며 "최소 5년 이상 투자가 계속돼야 하는 자원개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미 확보한 우량광산에 대한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국가적 손실이 확대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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