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으로 빚은 이 제품은 유통기한이 짧다. 여의도를 벗어나면 깨지거나 변질되기 십상이다. KS마크를 붙일 수 없는 이 제품(공약)을 시장(국민)에 유통시킬 것이냐. 이걸 두고 요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정부 부처가 소란스럽다.
한데 계산기도 제대로 두드려보지 않은 인수위는 현실을 말하는 정부에 호통을 친다. 보건복지부는 당선인의 기초노령연금 두 배 인상 공약을 지키기 어렵다고 했다가 공개 경고를 받았다. 신용불량자와 하우스푸어를 나랏돈으로 구제하는 데 반대한 금융위원회는 15일 업무보고 직전 방향을 틀었다. 박 대통령 당선인이 말한 '작은 인수위'의 엄포에 '5년간 131조원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숨어버렸다.
'약속한 건 지킨다'는 대전제는 위기의 순간마다 박 당선인을 건져 올렸다. 선거 기간에 했던 달콤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당선인의 고집이 이해된다. 하지만 400페이지에 이르는 공약집 내용을 숙제처럼 지키려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
기초노령연금 인상처럼 유턴 불가능한 정책엔 좀 더 뜸을 들여도 좋다. 성실한 채무자를 서운하게 만들 하우스푸어·가계부채 대책엔 비상 깜빡이를 켜도 괜찮다.
지금,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잠행 중인 당선인에게 권한다. '뚝딱 만들어낸 그 공약 못 지킵니다' 솔직한 고백도 '정직하겠노라' 약속했던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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