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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응답하라 1997>, 그 시절에 보내는 절박한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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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응답하라 1997>, 그 시절에 보내는 절박한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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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97>은 세 개의 시절로 나눠진다. 1997년부터 1999년 초까지 H.O.T.의 팬 성시원(정은지)의 학창시절은 2012년 동창회에 모인 성시원과 친구들에 의해 회고된다. 그리고 1999년부터 2012년 사이에는 <응답하라 1997>이 생략한 1999년부터 2004년이 있다. 이 5년 동안 성시원은 평생 친구이자 연인 같던 윤윤제(서인국)를 못 만났고, H.O.T.는 해체됐다.

10대의 성시원에게 1990년대 후반은 슬픔과 불안의 잠복기다. H.O.T.는 해체될 것이고, 성시원을 향한 윤윤제(서인국)의 마음은 전달되지 못하며, 윤윤제를 좋아하는 남자 강준희(호야)의 마음은 고백조차 할 수 없다. 윤윤제의 형 윤태웅(송종호)이 성시원을 좋아하는 것은 <응답하라 1997>가 1990년대 후반의 정서를 다루는 방식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청춘들이 고백과 파국으로 달려가는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시원은 H.O.T.를 있는 힘껏 사랑했고, 윤윤제는 성시원에게 마음을 고백하려 하며, 강준희는 윤윤제와 같은 학교를 다녀서라도 함께 있으려 한다. 성시원의 어머니(이일화)도 남편(성동일)이 암에 걸리자 암환자가 죽어가는 드라마의 내용이라도 어떻게든 바꾸려 노력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품은 사람들이 다가올 고통에 대한 불안을 딛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의 팬문화를 소재로 하되, 그 마음을 닿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순도 100%의 진심으로 존중했다.

<응답하라 1997>, 1990년대 그 이후


어른이 된 <응답하라 1997>의 청춘들은 고민보다 결정이 더 부각되고, 모든 문제에는 이상적인 해답이 있다.

어른이 된 <응답하라 1997>의 청춘들은 고민보다 결정이 더 부각되고, 모든 문제에는 이상적인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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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시원의 가장 고통스러운 5년을 건너 뛴 후, <응답하라 1997>은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성시원은 이미 윤윤제에 대한 마음을 깨달았고, 윤태웅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자마자 성시원을 포기하며, 그의 앞에는 매력적인 의사(주연)가 등장한다. 어른이 된 그들은 고민보다 결정이 더 부각되고, 모든 문제에는 이상적인 해답이 있다. 그래서 2005년 전후로 <응답하라 1997>의 1990년대는 의미가 달라진다. 첫 회에서 방송작가가 된 성시원은 “작가는 글만 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앵벌이 인생이다”라며 현실에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동창회가 끝나는 마지막회의 윤윤제는 “그리하여, 실패해도 좋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어른의 사랑을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사랑과 인생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한다.

<응답하라 1997>의 1990년대가 첫 회에서 현실의 시작점이자 돌아올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면, 마지막회에서는 아름다웠으나 이미 지난 회고의 시절이다. “어른의 사랑”이 시작된 후부터 <응답하라 1997>은 더 이상 1990년대의 고민에 응답하지 않는다. 성시원의 현실적인 고민이 상당 부분 남편에 의해 해결되는 것은 이런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다. 성시원의 남편은 판사와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이고, 성시원은 필요하다면 두 사람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섭외할 수도 있다. 성시원의 주변인들이 대부분 성공하고, 가장 넉넉하지 못한 방성재(이시언)마저도 낙천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연출자 신원호 감독의 말대로 <응답하라 1997>이 지키고자 했던 판타지다.

현실적인 과거, 판타지 같은 현재가 말하는 것


2005년 이후의 삶이 주는 안정감은 시청자가 1990년대를 안전하게 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2005년 이후의 삶이 주는 안정감은 시청자가 1990년대를 안전하게 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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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힘들되 낭만적이었고, 현재는 더 이상 치열하지 않은 대신 안정되고 편안하다. 복고를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런 판타지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10-20대 초반을 보낸 세대는 아직 30대 중반 정도고, IMF 이후 그들 나이에 사회적 안정을 얻는 것은 윤윤제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 1999년 KBS <학교>는 10대들의 왕따, 자살, 학교 폭력 등을 전면적으로 다뤘다. 1996년 시작해 1998년 끝나는 성시원의 고교시절은 10대가 낭만의 시절로 인식되던 마지막 순간이자, 당시의 10대가 그래도 현실에서 비켜설 수 있던 시절이다. 자신의 윗세대와 달리 그들은 안정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기도 어렵지만, 그 때보다 더 좋은 시절을 찾기도 어렵다. 완성도만이라면 <응답하라 1997>은 1999년 10대들이 고민과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멈춰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7>의 정서적인 톤은 2005년 이후의 이야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긴 사족, 또는 후일담처럼 보일지라도 동창회가 상징하는 2005년 이후의 삶이 주는 판타지에 가까운 안정감은 시청자가 1990년대를 안전하게 회고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7>은 무의식적으로 1990년대의 가치를 정의한다. 1990년대에도 10대들은 힘들었고, 고민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시대를 추억할 대부분의 30대는 지금도 첫 회의 성시원처럼 힘들다. 마지막회에서 성시원의 부모가 나와 성시원의 동창들에게 덕담을 던지는 것은 지금 그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과거를 편안히 회고하기엔,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젊고, 가야할 길이 많다. 첫 회의 성시원이 이 세대의 보편적인 현실이라면, 마지막회의 성시원은 이 세대가 꿈꾸는 판타지다. <응답하라 1997>은 이 절충을 통해 아직 회고할 수 없는 시절을 회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가장 현실적인 디테일로 만들어낸 가장 환상적인 회고.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의 아이들이 그 시절에 보내는 절박한 SOS일지도 모른다. 순도 100%의 꿈은 이제 그 곳 밖에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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