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철의 그림살롱 103회|서양화가 김중식…‘시·공합일’ 연작
잠에서 깨어난 영혼의 기록을 만났다. 하나씩 풀려지는 신비 그리고 수억 년을 살고도 참 이치에 목마른 비애. 여전히 이상향을 꿈꾼다. 도대체 진리의 문양은 있기나 한 것인가!
여기 조각보에 대한 미학이 있다. 내버리기 쉬운 자투리 천이 촘촘히 엮어낸 시간의 빛깔. 은은하기도 하고 또 화려한 색감의 천을 예술로 승화시킨 손끝 감성. 그곳에 할머니의 여인과 삶이라는 스스로 풀어내기 힘든 시대의 아픔과 자애의 눈빛이 아로새겨져 있다.
학창시절, 양팔이 없는 작품으로 유명한 ‘밀로의 비너스’ 여신상을 보면서 조각보가 떠올랐던 것은 아주 우연한 일치였다. 젖가슴을 드러낸 상체와 마치 가슴에서부터 흘러내리다 허리에 이르러서야 멈춘듯한 옷자락의 조각상에서 조각보와의 연관성을 딱히 구체적 설명을 할 수 없었지만 하나의 문장이 많은 위안과 격려를 준 것은 사실이다. “작품이란 무엇보다도 ‘그것을 만든 사람의 것’이며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의 것’이기도하다.”<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조반니 파피니 지음, 정진국 옮김>
한쪽 발에 몸 중심을 둔 곡선의 대리석인 이 조각은 밭을 갈던 한 농부가 나무를 치우다 동굴서 발견했다고 한다. 조각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조각상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프랑스 군인의 안목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유년시절 간식을 덮은 조각보가 현대에 이르러 미학적 가치로 재조명 받는 것과 관련, 할머니의 예술적 감각이 겹치면서 놀라움이 더 커졌던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남긴 자국서 새로운 낙원을 꿈꾼다
조각보의 진가를 확인시켜주기까지의 세월이라는 시간은 흘러간 것이라기보다 축적된 것이다. 조각보와 조각상이라는 결정체가 남긴 시간은 그러므로 공간화 된 시간으로 현재라는 물결에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시간과 공간이 엮어내는 마음이라는 그릇엔 누구나 나의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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