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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체시계는 몇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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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비행기를 타고 12시간 시차가 나는 곳으로 이동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낮과 밤이 뒤바뀌었는데도 몸은 이전에 있던 곳의 습관을 고집한다. 햇빛이 쨍쨍한데도 잠이 쏟아지고, 사방이 어두운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 몸은 어떻게 '24시간' 리듬을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단순한 습관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 몸 속에는 시계가 들어 있다.

'생체시계'는 생리나 대사, 행동같은 다양한 생명 현상이 24시간을 기준삼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리듬은 단순히 24시간 안으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넓게 보면 한 달부터 1년, 혹은 일생을 아우르는 '생체 리듬'이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24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일주기 생체리듬'을 '생체시계'로 범위를 좁혀 정의내리고 있다.
생체시계는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생체시계는 왜 나타난 걸까? 과학자들은 '태양'을 그 배경으로 보고 있다. 24시간 주기로 자전하며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구의 생활 환경에 생명체들이 진화적으로 적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체 시계는 반복되는 낮과 밤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해 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밤에 위험한 동물들이 어슬렁거린다고 치자. 약한 동물들 입장에서는 언제 밤이 될지 미리 알면 생존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지구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진화 과정인 만큼, 인간이 생체시계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건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 된 기록은 기원전 4세기 전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원정대를 이끈 선장 안드로스테네스( Androsthenes)가 남긴 것이다. 콩과 식물중 하나인 타마린드 나무 잎을 관찰하자 낮에는 수평상태를 유지하다가 밤에는 수직에 가깝게 위치가 바뀌더라는 관찰이다. 비슷한 발견이 18세기에도 이어진다. 프랑스 천문학자 드 마랭(De Marain)은 1792년 미모사 이파리가 낮에는 벌어지고, 밤이 되면 건드리지 않아도 접힌 채 늘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빛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두운 암실에 놓아 두어도 24시간 기준으로 잎이 벌어지고 닫히는 현상이 일어났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연구는 더욱 본격화된다. 1960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시계 실험을 실시했다. 창문이 없는 지하창고에 사람을 집어넣고 지켜봤더니, 밤낮을 알 수 없는데도 대부분이 거의 25시간 간격으로 자고 일어났다. 인체에서 생체시계가 작동해 생활을 조절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다.
연구 결과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원인은 유전자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파리를 활용한 연구에서 유전자를 조작하자 생체 리듬이 바뀌는 것이 드러났고, 1990년대에는 드디어 포유류에서도 생체시계 유전자가 발견됐다.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체시계 유전자와 여러 화학성분이 결합하며 생활 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규명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생체시계가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유전자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초파리 생체시계실험에 대해 토론중인 아주대학교 의과학연구소 김은영 교수(가운데)

초파리 생체시계실험에 대해 토론중인 아주대학교 의과학연구소 김은영 교수(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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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도 생체시계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아주대학교 의대 의과학연구소 김은영 교수 연구팀은 생체시계의 '속도'를 조절하는 원리를 밝혀내기도 했다. 생체시계 유전자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는 '피어리어드' 단백질에 당의 일종인 아세틸그루코사민이 얼마나 달라붙는지에 따라 생체시계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피어리어드 단백질은 24시간 내내 시간마다 모양이 달라지며 세포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관건은 피어리어드 단백질의 인산(燐酸)화다. 피어리어드 단백질 어디에 인산이 달라붙느냐에 따라 세포가 시간을 알 수 있는 분자적 지표가 되는 것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 여기 더해 아세틸그루코사민도 피어리어드 단백질에 달라붙을 수 있고, 그 결과 생태시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 아세틸그루코사민이 피어리어드 단백질에 제대로 달라붙지 못하면 생체시계 속도가 빨라져 21시간 주기로 움직이게 된다. 반대로 너무 많이 달라붙으면 주기가 27시간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연구는 생체시계가 빛 뿐만 아니라 음식으로 섭취하는 영양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간단히 생각하면 음식 속의 당 성분이 시계를 감았다가 늘리는 '태엽' 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때 그 지역에서 먹는 시간대로 식사를 하면 시차 적응이 더 빨리 된다고 한다"며 "영양분으로도 생체시계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체시계 연구의 가치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생체시계가 교란되면 결국 여러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암, 당뇨 등의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을 파헤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생체시계의 속도가 하루이틀 정도 교란된다고 해서 당장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화되면 결국 몸이 고장나버릴 수 있다. 만약 생체시계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생체시계를 중시하는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이 병리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생명 현상을 해석하는 인식의 틀로 떠오르고 있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신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 전략을 세우고 타겟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기초연구"라고 덧붙였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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