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명품매장 좋아하는 진짜 이유
여성이 쇼핑을 즐기는 이유?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 한쪽에 마련된 원형 테이블에 놓인 차 한잔. 고객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판매 사원이 정겹게 얘기한다. 그 모습만 보자면 그곳은 카페. 의자, 테이블을 장식한 꽃, 찻잔 세트가 여간 고급스럽지 않다.
“저희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매장 인테리어를 하는데 한국은 예외입니다. 고객 특성상 매장 안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거죠. 고객과의 친밀감을 높이면 확실히 매출에도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차와 간단한 쿠키도 준비해 고객에게 대접하면 고객은 VIP가 된 것 같다며 좋아합니다.” 화장품 브랜드 L 홍보 이사 Y씨 얘기다.
여성복 매장 상황도 비슷하다. 친한 고객 몇 명이 같이 온 것인지, 아니면 매장에서 만난 것인지, 친목계 모임이 따로 없다. 판매 사원과 어울려 자신의 옷장인냥 진열된 옷을 이것저것 입어보고 서로 평가한 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건 파는 직업이 아니라 고객 얘기를 듣는 게 저희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고객과 친해질수록 매출이 올라가죠."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매니저로 15년 이상 근무했다는 P씨 얘기다. 단골 고객 집안 사정, 개인적인 고민은 남편이나 친구보다 자신이 제일 많이 알고 있을 거라 덧붙였다.
숍 매니저 역할 가운데 으뜸은 고객 관리.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격대 브랜드일수록 숍 매니저 역할이 중요하다. ‘한 번 맺은 인연 소중히’ 원칙을 잘 지키면 매출이 곧 인격이라는 세일즈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다.
고객 관리를 위해 수시로 전화하는 것은 기본. 명절이나 기념일에 선물 구입하느라 꽤 큰 지출을 하기도 한다. 판매 인센티브를 받는 숍 매니저들에게 큰 것을 위한 작은 투자는 아깝지 않다.
여성 고객, 대화 속에 필요한 쇼핑 아이템 암시
대화를 할수록 여성은 지갑을 연다
마케팅 전문가 마사 발레타 Marti Barleta 의 저서 ‘사모님 마케팅’ 을 보면 중년 여성에게 물건 파는 기술 가운데 중요한 항목으로 ‘잘 들어주기’ 가 있다. 여성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왜 이 물건을 사는가’를 상대에게 암시한다는 것. 그래서 판매 사원은 여자 손님의 말을 끊어서는 안되고 대화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 제시해 줄 것을 권한다.
반면 남성은 일 처리에서도 그렇듯 답을 빨리 찾아 능력을 과시해야하는 것처럼 쇼핑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빨리 결정되는 것을 좋아하기에 쇼핑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 게일 쉬이 Gail Sheehy의 저서 ‘새로운 길’에서 50대 중년 여성이야말로 명품 고객의 확실한 자격을 갖추었다 설명한다. “50대에 접어든 여성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가사 노동,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에게 투자하는 계층이죠.”
“병원에서도 못 고친 내 우울증, 숍 매니저가 치료했다”
명품 매장을 즐겨 찾는 사모님들은 쇼핑보다 대화가 목적일 때가 있다고 얘기한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을 위한 쇼핑이 많았죠. 이제 나를 위한 쇼핑을 합니다. 게다가 얘기 잘 통하는 매니저를 만나면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우울증 때문에 오랫동안 치료 받아왔는데 3년 동안 병원 다녀도 못고친 내 병, 숍 매니저가 고쳐준거에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명품 브랜드 VIP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Y씨. 그 고객은 그날도 숍 매니저를 기쁘게(?) 할 매출을 올려주고 매장을 나섰다. 물건이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 비용을 지불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일요일 밤 10시에도 전화해서 속상한 얘기 털어놓기 시작하면 참 곤란해요. 때로 매장에 오셔서 2시간씩 계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럼 정말 힘들죠. 게다가 매출도 안올려주고 가시면 정말 진이 빠지고요.” 명품 브랜드 마케팅 이사 S 씨는 VIP 고객 행사 한 번 하고나면 일주일 정도는 고객들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고객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대접해주는 곳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는 얘기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저서 ‘럭셔리 코리아’에서 럭셔리 제품을 소비하는 유형 가운데 하나로 ‘과시형 소비’를 꼽았다. 그러나 실제 명품을 생필품처럼 소비하는 부유층 사모님들은 ‘상담 사례형 소비’가 많다는 항목을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오늘도 할 얘기가 많은 사모님들 심리학자를 찾기 전에 숍 매니저를 찾아갈 것이다. 그들은 쇼핑과 상담의 경계에서 행복함을 느낄 것이다. 여성이 백화점에 오래 있어도 지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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