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러시아와 닮은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바 있는 MIT의 사이먼 존슨 교수의 얘기다. 언뜻 보기에 일리가 있는 지적인 것 같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존슨 교수는 미국 정책 부문을 좌지우지하는 금융 엘리트와 러시아의 독점 재벌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 및 경제 위기가 그 깊이와 속도 측면에서 이머징 마켓에서 벌어졌던 위기와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해외 자본 유입과 급속한 신용 팽창, 과도한 레버리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가격 거품, 그리고 자산가격 폭락과 뒤이은 금융권 대참사까지 두 지역 금융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다는 것.



충격적인 사실은 또 있다. 금융위기를 일으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러시아의 경우 비즈니스 엘리트였고, 미국은 금융권의 '브레인'들이었다. 두 개 그룹 모두 엄청난 도박을 벌이다 위기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위기의 전조가 뚜렷해질 때까지 정부의 측면 지원이 있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지난 2007년 하반기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가운데 이제 금융권이 해결책을 가로막고 있다고 존슨 교수는 지적한다. 일례로, 은행이 손실 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자산건전성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인데 이는 경제 전반에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산건전성이 떨어지는 은행들은 대출을 하지 않으려 하거나 높은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있다. 은행이 어떤 전략을 취하든 경제 전반을 멍들게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은행 자산건전성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권의 중요성이 극도로 높아진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02년 미국 GDP에서 금융권의 비중은 무려 41%에 달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개인 부채는 GDP의 295%를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이 중 금융권 부채는 121%로 집계됐다.



금융권은 지난 1903~1933년 사이 매우 전문적이고 연봉이 높은 산업에 속했다. 그러다 1980년까지 내리막길을 걷다 다시 고연봉 전문직종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뉴욕대학과 버지니아대학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금융업의 성격이 이 같이 바뀐 주요인이 탈규제였다.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하고, 현란한 금융기법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사이 질서가 허물어졌다.



뿐만 아니라 탈규제화는 신용 팽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신용을 그대로 수입으로 탈바꿈시키는 기법이 은행권 이익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신용이 팽창할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미국에서는 분명히 신용이 위축되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용 팽창과 레버리지는 은행권의 저조한 수익 현황을 교묘하게 가리고 부풀렸다. 이제 월스트리트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다고 존슨 교수는 주장한다. 정부가 금융권에 대해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러시아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을까. 마틴 울프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머징 마켓의 경우 경제적인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반면 미국은 로비 형태의 시스템에서 영향력이 발생하는 시장이다.



더구나 월스트리트가 오늘날과 같이 보존돼야 한다는 신념은 대체로 두려움으로 인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고 울프는 말한다. 대형 은행이 너무 커서 파산할 수 없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철한 정책자들이 이들에 대한 테스트에 소극적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재 미국은 파산에 대한 엘리트 층의 두려움과 구제금융에 대한 대중의 혐오 사이에서 갈등을 벌이는 실정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미국은 러시아보다 일본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파산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단력 있는 구조조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울프는 주장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핵심적인 금융회사가 지불 능력을 회복해야 하고, 어떤 영리적인 금융회사도 '대마불사'의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외형을 확장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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