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지난 광역버스 좌석제 현장 가보니…
[아시아경제(수원)=이영규 기자] #10월29일 오전 7시29분 수원 영통구 창룡대로 우만4단지 정류장. 수원터미널에서 강남으로 가는 3007번 버스가 들어온다. 버스 앞 유리에는 '잔여좌석 없음'이란 표시가 붉은 색으로 선명하다. 이 버스는 정류장에 들어오기 전 이미 입석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버스 운전사는 다시 차를 세운다. 그리고 손님을 태운다. 이번에는 앞문이 아니고 승객들이 내리는 뒷문이다. 앞쪽에 사람들이 많아 승차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오전 이곳을 지나는 1007번, 1007-1번, 3007번, 4000번, 7000번, 7001번, 8800번 등 7개 노선 광역버스는 오전 7시20분을 지나면서 대부분 입석 승객들로 넘쳐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사회 각 분야에 만연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국토교통부의 '광역버스 좌석제(입석금지)'가 시행 100일을 넘기면서 헛돌고 있다.
광역버스는 여전히 입석 운행을 밥먹듯 하고 있다. '잔여좌석 없음'이란 푯말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 버스는 아예 뒷문까지 열고 입석 승객을 태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8월 좌석제를 일정 기간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보면 정책 자체가 실종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광역버스 좌석제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경기, 인천, 서울 등 수도권 3개 지자체와 모두 6차례 협의를 갖고 6월 대책을 마련했다. 이어 7월16일 도로교통법상 '승차정원 준수와 안전띠 착용 의무조항'에 근거해 좌석제가 본격 시행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 혼란과 9월 대학교 개학 후 교통대란이 우려되면서 국토교통부는 8월 중순 슬그머니 '좌석제' 탄력운용을 발표했다.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를 다니는 광역버스에 대해 한시적으로 입석 운행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국토교통부는 올 연말까지 서울 진입 지점에 환승센터를 대폭 확충하고 지하철 증선을 추진하는 등 좌석제 조기 정착에 노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자체와 시민, 버스업체들은 정부의 좌석제 도입 후 갈팡질팡한 정책을 보면서 불만이 많다.
경기도 관계자는 "입석을 금지하려면 당장 부족한 버스부터 확보한 뒤 시행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없이 앉아서 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 뒤 "결국 버스를 늘리려면 업체가 해야 하는데 업체는 재정난으로 어려운 상황이어서 지자체가 이를 지원할 수밖에 없어 또 다른 재정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지원을 통해 버스를 늘린다고 해도 서울시와 시내 진입을 협의해야 한다"며 "이 또한 큰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특히 "(광역버스 좌석제) 준비기간이 짧았다"며 "단기간에 몰아부치다 보니 어려운 것들이 많이 발생했고 시민들이나 버스업체들도 혼선을 빚었다"고 강조했다.
도는 좌석제 시행 후 300여대의 전세버스를 증차해 혼잡노선 중심으로 운행하고 있다. 도는 이를 위해 115억원의 예산을 버스업체에 지원하고 있다.
시민들의 불만도 크다.
용인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 사당으로 출근하는 김혜정(35)씨는 "좌석제 시행 초기 입석이 안 돼 30분 이상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택시를 타고 몇 정거장 앞으로 가서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입석을 탄력적으로 허용해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을 지적했다.
좌석제 시행 이후 버스운행 현장의 문제점도 나오고 있다.
승객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 오히려 배차 간격이 확대되고 있다. 7개 광역버스 노선이 있는 수원 우만4단지의 경우 오전 6시대 배차 간격은 차량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2분 간격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7시15분을 지나면서 짧던 배차간격은 6분대로 늘어난다. 차량 도착도 눈에 띄게 줄었다. 많은 승객이 이 시간대 몰리는 것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런가하면 좌석이 꽉 찼는데도 차량 앞에 '잔여좌석 없음'이란 푯말을 부착하고 운행하는 버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행법은 푯말을 부착하지 않을 경우 행정관청의 지도단속 대상이다.
또 푯말을 부착하고도 버젓이 입석 승객을 태웠다. 일부 버스는 내리는 뒷문까지 열고 입석승객을 태우느라 바빴다. 좌석제가 7월16일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국토교통부 김건호 사무관은 "연말까지 지하철을 증선하고 환승체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광역버스의 좌석제 위반은 경찰청 단속 대상이다. 정작 좌석제를 도입한 국토교통부와 해당 지자체는 단속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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