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 - 5장 저수지에서 만난 여인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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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말이오. 얼마나 놀라셨어요? 근데..... 그따위 몹쓸 짓을 한 게 이층집 영감이란 건 확실해요?”
한편 달래듯이 하면서 여전히 하림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떠보듯이 물었다.
“아, 그렇지 않음? 그렇지 않음,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했겠수? 나랑 웬수진 일도 없구, 개랑 웬수진 일도 없는데.... 응? 누가 그랬겠수?”


고모할머니는 하림에게 따지듯이 되물었다. 그런 품이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지금은 늙었다지만 아직 그 옛날 처녀시절, 머슴 따라 야반도주 하던 기세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예 개를 쏜 범인으로 이층집 영감을 단정해놓고 있었다.

“그러면 이층집 영감이랑은 원수 진 일이 있다는 말인가요?”
그런데도 하림은 여전히 사돈 남 말 하듯 실실 미소까지 띄면서 말했다.
“그럼. 웬수지. 웬수! 그래, 우리 여름이하고 가을이가 동네에 돌아다니면서 지 세상처럼 노는데 영감네 집에도 들어가구 했지요. 아, 개가, 짐승이 무얼 알갔시오? 그게 누구네 집인지 말이오. 그러다가 오줌도 누고 그랬겠지. 짐승이니께.... 똥까지 쌌는지는 모르겠지만.....그란데 영감이 쫓아와서 막 욕을 해대고 그랬지 뭐유. 개가 자기집 잔디밭에 와서 거시기를 하고 간다고 말이오. 아, 개가, 짐승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렇수? 여게가 도시도 아니구.”
여간 흥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모할머니는 그렇게 말해놓고 한동안 숨이 찬 지 한동안 가슴을 쓰다듬으며 헥헥거렸다.
“그건 그렇죠. 개란 놈이 그걸 알 리가 없으니..... 그런데 뭐라고 욕을 하던가요?”
병 주고 약 주고 식으로 하림이 한편으론 그녀의 말을 추어주면서 한편으론 자기가 알고 싶은 질문을 빠뜨리지 않고 던지고 있었다.
“아, 뭐라 하긴.... 개를 묶어놔라, 가두어 놔라, 그렇지 않음 죽여버리겠다, 뭐, 벨벨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다 하고 그랬지. 눈을 황소처럼 부릅뜨고 말이야. 흰창을 번떡이면서.... 그래도 영감이 정신이 좀 어떻게 된 사람이라고 하길래 내버려두었지. 아, 아닌 말로 굴러온 돌이 백힌 돌 쳐내는 꼴이지, 어디서 굴러 왔는지 모르는 지들이 날더러 이래라 저래라 할 게 뭐가 있겠수? 참으려면 자기들이 참아야지, 우린 여기서 태어나 빨갛게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인데, 지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뭐라고 큰소리를 치고 야단이오. 안 그렇수?”

하림의 질문이 그렇지 않아도 건질거리고 있던 그녀의 가슴을 건드려놓았던지, 가을 장마에 봇물 터지듯이 말이 이어졌다.
“개만큼도 못한 인간이란 말이 있쥬.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오. 댁도 그게 개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부다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여름이와 가을이는 달랐어요. 사람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우. 말귀도 잘 알아듣고.... ”
“그럼 정이 많이 드셨겠네요?”
“들다마다. 아, 팔년을 같이 살았는데, 팔년을....! 정이 들어두 한참 들었지. 그놈들 죽고나서.... 한동안 밥을 먹어도 밥맛이 없고, 잠을 자도 잠이 안 오고 눈에 선했어. 아직도 집에 있음 그놈들 짓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우. 자식을 잃어도 이렇게 힘들진 않을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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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할머니의 목이 메었다. 한번 이야기를 꺼내놓으니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긴 팔년을 같이 살았다니,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없이 팔년을 키우던 놈들이 하루 아침에 총에 맞아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처참한 ‘개죽음’이 되어 돌아왔으니 억장이 무너지고, 허파가 뒤집어져도 남을 일이었을 것이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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