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운동부니까 어쩔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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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고등학교 도서관에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하러 갔다. 1학년 학생 전체가 온다고 했다. 과연 200여명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대개 이렇다. 사서 교사나 담당 교사가 주제 도서를 선정하고, 학생들과 함께 독서 활동을 하고, 작가를 초청해서 강연과 질의응답과 퀴즈 등의 시간을 보내고, 책에 서명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학생들이 나의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낭독하고 몇 가지 퀴즈를 하고 상품을 받아가는 가운데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웃고 박수도 치면서.


내가 강연을 해야 할 차례가 돼 책을 쓴 이유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백 명 모두가 집중한다는 건 그들이 고등학생이든 성인이든 애초에 몹시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오고 싶어서 온 자리도 아닐 것이다. 뒤에 앉은 몇몇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야 학교에서 강연하다 보면 흔한 일이니까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보며 말을 계속해 나갔다. 나보다 사서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더욱 그들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픈데 그러기도 어렵고 대놓고 눈치를 줄 수도 없고, 그저 나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슬픈 몸짓만을 보내왔다.

행사가 끝나고 사서 교사가 나에게 한 첫마디는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계속 쐈지만 어쩔 수 없었고, 그들이 운동부여서 다른 학생들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아아,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들은 이 유서 깊은 학교의 운동부였군요. 운동하는 학생들이 그 귀한 시간을 빼서 행사에 와준 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의 태도는 운동하는 사람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얄궂게도 그날 내가 한 강연 주제는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능력 좋은 사람 찾는 건 쉬운 일이 됐지만, 태도가 좋은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고. 한 사람의 잘됨은 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좋은 태도가 그의 잘됨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고. 아마 그 학교 운동부 학생들의 꿈은 프로 선수가 되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데 닿아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공해서 프로 선수가 된다면, 예를 들어 야구 선수가 된다면, 그들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구장의 그 큰 전광판에는 그들의 이력이 나온다. 어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어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여기에 이르렀다고. 나는 응원하는 야구팀이 있어서 시즌권을 끊어두고 시간이 될 때마다 그 홈구장에 간다. 그런데 그 학교의 선수가 타석에 선 것을 보면 그를 응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아, 저 학교 운동부는 교실에서 학생답지 않았지,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했지, 한 사람으로서 별로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 하는 마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파괴해야만 학교폭력은 아니다. 학교에서 나쁜 태도로 타인의 수업권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도 학폭이다. 특히 공인이 되고자 한다면 어디에서든 자신의 태도를 삼가야 한다. 운동부 학생 중 극히 일부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런 경험들이 늘어난다면, 학교를 다녔던 모두는 스포츠와 멀어질 것이다. 운동장에 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귀한 시간과 돈과 마음을 보내지는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쪼록 좋은 태도를 지닌 이들이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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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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