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환자처럼 문진표·신체검사·수술 진행
4살부터 중년까지 의뢰도 다양해

"환자분 검사 들어갑니다. 키 94cm, 체중 264g이네요. 상처를 덮으려면 피부와 모발이식을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명한 의사에게 진료받기 위해 원정 입원도 불사하는 곳. 진료를 위해 1년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많다. 이곳은 도쿄에 있는 인형병원 나츠미 클리닉이다. 오래되고 헤진 인형이나, 부주의로 훼손된 인형을 복원하는 곳으로 일본 안팎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태까지 이 병원을 거쳐 건강하게 퇴원한 인형 수만 1만5000개에 달한다.

일본 언론은 단순히 인형을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환자처럼 인형을 대하며 고객의 동심을 지켜주는 진료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나츠미클리닉에 입원 중인 '피-짱'의 모습.(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나츠미클리닉에 입원 중인 '피-짱'의 모습.(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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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일본의 한 온라인 매체는 나츠미 클리닉의 하코자키 나츠미 원장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하코자키 원장은 패션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옷과 커튼을 수선하는 가게에서 일했고, 이때 함께 인형 수선을 배웠다. 그는 "처음에는 가욋일로 맡던 일이었지만 인형을 수선했을 때 눈물을 글썽이는 고객들이 많아 본격적으로 개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곳이 다른 인형병원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는 서비스 덕분이다. 실제 병원과 같은 절차를 밟으며 인형과 함께 보낸 보호자의 동심을 지켜주는 것이 이 병원의 특징이다.


먼저 병원에 방문한 보호자는 환자의 상태를 문진표에 기록한 뒤 상담을 진행한다. 이는 보호자가 원하는 인형의 치료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코자키 원장은 설명했다.


가령 인형이 난로에 닿아 치료를 원하는 보호자라도 "상처 나기 이전의 깨끗한 상태로 복원해 달라"고 하거나 "나를 위해 다친 것이니 난로에 탄 흔적을 어느 정도 남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각자의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츠미 클리닉에 입원한 환자 '고마짱'이 체중을 재고 있다. (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나츠미 클리닉에 입원한 환자 '고마짱'이 체중을 재고 있다. (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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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신장과 체중을 재는 기본 신체검사도 꼭 진행한다. 복원 이후 같은 크기와 중량을 맞춰 퇴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솜은 뭉치기 때문에 같은 양의 새 솜으로 교체하면 일시적으로 부피가 커지는 '부기'도 발생한다. 하코자키 원장은 "부은 모습을 보고 보호자가 당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곧 진정된다. 다만 보호자 요구가 있으면 솜을 더하고 빼는 조정도 추가로 한다"고 덧붙였다.


인형과의 추억을 소중히 여겨 보호자가 맡긴 인형의 솜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이 클리닉이 유명한 이유는 '마음 하트' 서비스 덕분이다. 인형 안을 채우고 있던 솜을 새것으로 교체할 때, 원래 들어 있던 솜을 하트 모양으로 분홍색 거즈에 싸서 속에 함께 넣어준다. 심장과 같은 '본체'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추억을 간직해두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려 원래 솜을 조금 남겨주는 서비스다.


이 밖에도 입원하는 인형이 혼자 외롭지 않도록 함께 사는 인형을 임시 보호자로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나츠미클리닉의 '고마짱' 치료 견적서. 원단을 갈고 코와 눈을 새로 붙인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나츠미클리닉의 '고마짱' 치료 견적서. 원단을 갈고 코와 눈을 새로 붙인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출처=나츠미 클리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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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중인 인형은 홈페이지에 치료 과정을 공개해 보호자들이 참고할 수 있다. 코멘트도 작성해 환자와 의료진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 입원에는 평균 1~2달이 소요된다. 복원을 위해 당시 색깔과 재질에 맞는 원단을 고르고 찾는 등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심을 지키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다 보니 인형을 맡기는 보호자의 연령대도 4살 어린이부터 중년까지 다양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인형을 함께 외출하며 사진을 찍는 등 애정을 쏟는 '인형 활동'(누이카츠·ぬい活)가 꾸준히 유행해, 병원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매달 100개의 인형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데, 지난달 기준 올해 예약은 모두 마감됐다. 항공 택배로 중국이나 대만 등 해외에서 진료를 위해 인형을 보내는 사례도 많다고 하코자키 원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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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냐는 질문에 "손상된 원단을 교환해달라고 곰 인형을 안은 여자아이와 어머니가 찾아왔는데, 아이가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고 입원 직전까지 울더라"며 "복원된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어두웠던 아이가 난생 처음으로 기뻐서 울었다. 딸의 성장을 함께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더라. 그런 경험에 힘이 난다."고 답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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