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두환 콘텐츠매니저] "이게 미국이 숱한 도전 속에서도 과학·기술 강국의 자리를 지켜내는 진짜 힘이다."
정보기술(IT) 업체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인의 최근 미국 방문 소감이다. 그가 다녀온 곳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일정 중 시간을 내 과학산업박물관(MSI·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을 관람한 단상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에서 착잡함을 느꼈다고 한다.
1933년 문을 연 MSI는 5만7000㎡의 면적에 75개 전시실을 갖춘 미국 최대 규모의 ‘체험형’ 박물관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나포한 독일군의 U505 잠수함 실물이 전시된 곳으로, 박물관측이 전시를 위해 잠수함을 먼저 옮겨놓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MSI가 유명한 것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과학과 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라는 점이다.
거기에서 그가 느낀 왜 착잡함은 무엇일까. “교과서로 읽고 암기하는 것이 전부인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가 눈에 보여서…”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대한민국 과학교육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의 말은 기우가 아니다. 최근 한 입시기관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조사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과학기술의 산실로 불리는 전국 4개 과학기술원(IST)에서 중도 이탈한 학생 수가 1006명에 달한다고 한다. 기관 측은 이탈한 학생의 80~90%가 의학 계열로 이동했다는 추정도 덧붙였다.
의대 선호 현상이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이 과학고 출신인 IST 학생들이 대거 이탈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왜 이렇게 과학이 홀대를 받는 것일까.
실마리는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서울의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중학교 3학년 때 과학 관련 실험을 한 횟수가 3차례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등학교로 옮겨가면 사실상 과학은 현장이 아닌 교과서에만 의존한 수업으로 변질된다. 한 대학의 전자공학 전공자는 고등학교 3년간 실험실 수업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한다. 문과생도 아닌 이과생의 기억이다. "대입 준비만도 빠듯한데 한가하게 실험하고 있을 시간이 있었겠어요?" 원리에 대한 체험과 이해가 생략된 채 결과만 외우는 암기식 과학 교육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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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구미의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인재양성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국가발전의 동력은 과학기술이고, 그 인재 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오공대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을 천명하며 1975년 세운 학교다.
하지만 관련 학과 몇 개 만든다고 하루아침에 수만 명의 과학 기술 인재가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초 교육 단계부터 외면당한 과학 교육의 현실 속에서 인재 양성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연금과 함께 교육을 3대 개혁 과제로 천명했다. 어쩌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개혁은 교육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 ) 등 거창한 인재 양성을 논하기 전에 근본적인 고민 없는 개혁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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