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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돈줄 막고 돈 풀라는 당국 은행도 길게는 못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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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빵셔틀'은 중·고등학교에서 힘센 학생들의 강요에 의해 다른 학생들이 빵이나 음료 등을 대신 사다 주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비롯된 유행어도 있다. "여기 1000원 줄테니까 빵 4개랑 우유 2개 사오고 500원 남겨와."


요즘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의 지침을 이 빵셔틀에 비유한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같지만 뼈가 있다. 앞 뒤가 안맞는 정책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은행으로 돈이 들어오는 입구는 막고, 가진 돈은 더 풀라는 게 당국 주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직후에도 예금금리를 도로 낮추라고 했다. 올해 여름만 해도 '예금금리는 월 1회 이상 시장금리 변동을 점검해 기본금리에 반영하라'(7월6일 금리공시제도 개선방안)고 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김주현 위원장을 비롯해 금융위는 은행권과의 회의 자리, 연구기관까지 내세우며 '자금확보 경쟁 자제' 메시지를 연일 내놨다. 시중은행이 예·적금 금리를 올리면서 자금쏠림 현상이 심해지자 내린 극약처방이다. 은행 입장에선 수신으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차단돼 버렸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시장에서 우량한 은행채에만 수요가 몰려 돈맥경화가 심각해지자, 당국의 요청에 따라 은행채 발행까지 줄였던 시중은행 입장에선 더 난감해졌다. 이렇게 돈이 들어오는 구멍은 다 막혔는데 5대 은행이 해야할 일은 또 있다. 채권시장에 95조원을 풀어야 한다. 이 역시 당국의 요구에 따른 조치다. "자금 유입은 못하게 막고,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은 동원해 할 건 다 하라고 하는데, 이게 빵셔틀이 아니고 뭔가요." 은행권 고위관계자 말에 쓴 웃음이 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물론 앞뒤가 안맞는 정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요구하는 금융당국도 속사정이 있다. 시중은행이 수신금리를 5%까지 올리다보니 사람들이 저축은행은 물론 증권사와 보험사에 넣어놨던 자금까지 다 빼서 몰려왔단 것이다. 가뜩이나 채권시장도 어려운데 이대로 두면 저축은행, 증권사, 보험사까지 큰일날 것 같으니 시중은행에게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삽으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아야 할 사태가 터지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한다는 게 당국의 계산이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 은행이 지금이야 '빵셔틀'도 견딜만큼 체력이 튼튼하지만 내년이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예측이다. 증권사들부터 당장 내년 은행 당기순이익이 올해 대비 10% 넘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가계대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부실차주가 수면 밖으로 드러나 대손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는 참고 버텼던 은행도 무작정 받쳐주기 힘들거란 맥락이다.


은행 건전성 지표는 '수도꼭지는 잠그고 욕조에 받아놓은 물만 빼라'는 당국의 정책을 벌써 반영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여유자금을 보여주는 지표인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이 10월 100%대에서 11월 90%대로 순식간에 떨어졌다. 은행이 버팀목 역할을 계속 해주길 바란다면 은행의 자금 여력을 끌어올릴 플랜B를 시급히 세우는 것도 당국의 역할이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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