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해고 이후 우리는 동료와 가족, 나를 잃었다
"그들(GM)이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 2018년 설을 사흘 앞둔 2월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날렸다. 그는 한국에 있던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이를 자신의 업적이라고 으스댔으나, 군산은 악몽에 빠져들었다. 한국GM 종업원 2044명과 164개 협력업체 직원 1028명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었다. 앞서 1년 전 조선소 가동 중단으로 이미 4859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전북 군산시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일제시기 개항과 함께 지역 거점 도시로 성장했으나, 군사독재정권 시기 마련된 동해안 도시개발계획에서 비껴나며 쇠락을 겪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대중무역의 중심지로 재기를 노렸다.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들어섰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에 대한 믿음으로 생활 기반을 도시에 단단히 뿌리 박았다. 조선소를 따라 선박블록, 기자재 업체들도 군산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조선소의 대형 크레인을 바라보며 ‘세계도시 군산’을 꿈꿨다. 군산은 일터이자 삶터이자 놀이터였으나, 일자리가 사라지자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만 남았다.
노동자들에게 그날 이후 잃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족, 동료, 직원이라고들 한다. 모두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도 잃어갔다. 실직자가 새 일을 찾는다는 것은 ‘눈을 낮추는 과정’이었다. 과거의 기준과 영광, 자존감과 최소한의 존엄 같은 것들이 떠올랐지만 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더 가혹한 것은 소통의 방식이다.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분하고 억울해 기자들과 만났고 화제도 됐지만, 달라진 건 문자가 등기우편으로 바뀐 것뿐이다. "무엇보다 해고 과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 일에 정착하고도 해고의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다. 예의 없는, 비합리적인, 납득할 수 없는… 해고는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고 있다. 2015년 자동차 정비에 대체 부품을 쓸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법이 통과됐다. 해외에서는 대체 부품을 활용한 정비가 당연했다. 일부 해고 노동자들은 이렇다 할 글로벌 메이커가 없는 대만이 자동차 부품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발품을 팔고, 작은 협력업체들이 함께 모여 ‘대체 부품 협의회’도 만들고, 마침내 국내 1호 대체 부품을 만들어냈다. "외국 회사 부품을 대체할 겁니다. 지금은 대만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 자동차 대체 부품 시장에 끼어들려고 하는 거예요."
해고와 실직은 더이상 군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이 이농을 불렀듯, 제조업에서 4차산업으로의 전환은 제조업 노동자의 실직과 이직을 강요하고 있다. 군산의 문제는 곧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다. 저자가 6주간 군산에서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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