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美, 경제는 中' 바람직하지 않아
G2 경쟁 속 공급망 사슬 벗어날 핵심은 외교력
기업하려는 마인드 감소…성장동력 엔진 꺼져가

노동·금융 등 산적한 과제 '담대한 도전'으로 풀어야
대선주자 덕목은 '개혁의지'…국가채무 재검토 필요
흑자재정 반드시 선은 아냐…성장 없는 복지는 환상

진념 전 부총리기 아시아경제와 신년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진념 전 부총리기 아시아경제와 신년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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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1997년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난 수습을 진두지휘한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아시아경제와의 신년인터뷰에서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국가발전전략 수립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산업화 시동을 건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 60년 되는 해다. 진 전 부 총리는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 발전전략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핸 향후 5년을 책임질 대통령 선거가 있는 만큼,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적기라는 게 진 전 부총리의 판단이다. 그는 장기 전략에 대해 꺼져가는 국가 성장동력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 전 부총리는 각종 노동, 금융 등 산적한 개혁과제를 ‘담대한 도전’으로 표현하면서 우리나라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혁신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여야 대선주자들에 대해선 공약과 비전을 갖고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국가경영에 대한 기본계획’을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진 전 부총리와의 일문일답.


-한국 경제가 당면한 대외 위협 요인은.

대내·외 경제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대외적으로 보면 세계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간의 G2 패권경쟁은 단순히 무역에 그치지 않고 기술·문화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술경쟁이 아주 첨예하다. G2 경쟁에 세계 공급망 사슬이 굉장한 위험을 겪고 있다. 앞으로도 공급망 애로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핵심은 외교력이다. ‘G2 헤게모니 전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남느냐’가 중요하다. 경제도 안보도 미국이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도 바람직하지 않다. 처절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한미일 공조는 필요하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파급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본이다. 한미일 관계를 통해 어떻게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조율하고 고쳐나갈지, 그리고 중국에서 올 수 있는 제재 등에 대항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똑똑한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

-국내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 ‘기업하려는 마인드’가 굉장히 줄어들고 있다. 또 일자리 문제 때문에 청년들은 고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78만9000명이 취업준비생이다. 특히 공무원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생’이 넘쳐난다. 이런 나라는 발전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빈부격차는 나아지지 않는다. 최근 소득재분배 개선은 정부의 재난지원금 영향이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대내·외 여건을 보면 ‘담대한 개혁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하는 게 우선 과제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대선 주자들을 평가한다면.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나타낸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치 행태는 국민 수준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대선 과정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대안을 내야 한다. 담대한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올해 투자하거나 고용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한다면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진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대선 후보 캠프에선 처방은 물론 대응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답답하다. 특히 대선 주자들은 ‘국가경영에 대한 기본적인 계획’을 보여야 한다. 국가 경영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정치에서 내각은 사실상 보이지 않고 권한이 집권 여당과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이건 안 된다.


-대선 주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개혁 의지다. 과거 독일을 보면 지지기반이 노동자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어젠다 2010’의 한 축인 하르츠 개혁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확대하고 노동복지를 줄였다. 결국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에게 정권을 넘겨줬지만 독일은 경제 부활에 성공했다. 슈뢰더는 표를 긁어 모으는 데에는 실패한 정치인이지만 독일의 미래를 설계하고 개혁한 정치가인 셈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설계하는 정치가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 표를 좇거나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는 ‘정치꾼’들만 넘친다.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한다. 이게 일종의 거버넌스다. 부처 장관을 고를 때는 그 부처가 ‘이 시대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이념과 진영에 상관없이 선발하고 권한을 줘야 한다. 이게 국가경영의 기본이다. IMF 환란 직후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의 당선과 관련없는 이규성(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부총리) 등을 뽑아 주요 핵심부처에서 일하도록 했다. 이는 ‘신의 한수’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쓰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짊어져야 할 국가부채 부담이 크다.

재정적자는 충분히 걱정할 만한 상황이다. 올해 예산만 600조원이 넘는다. 지난 5년 동안 중앙정부의 채무는 1000조원에 달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 반 동안 무려 400조원이 늘어난 것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제일 빠르다. 특히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는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 부채가 엄청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공기업 부채가 약 500조원에 이른다. 이걸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에 대한 현실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국가채무가 늘어나도 ‘무엇을 위해 썼느냐’다. 발전소 건설을 위해 한전 부채가 늘었다면 나중에 가동해 수익이 나니까 순수 부채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공기업 부채는 추가적인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부채와 거리가 멀다. ‘쥐어주기 식’이기 때문이다. 국가채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증세는 필요한가.

흑자재정이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 경제가 어렵고,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민이 있으면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생활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문제는 큰 틀의 계획을 통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 선심성으로 여기저기에 수십조원씩 쓰는 게 문제다. 기본소득 정책을 논할 게 아니라 기존의 제도, 가령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부족하다면 왜 그런지 검토하고 보완하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는 재정 파탄 탓에 경제가 망가진 베네수엘라와 그리스 사례를 봤다.

증세도 경우에 따라 필요하다. 다만, 그 전에 국민들에게 ‘재정개혁 통해 낭비 전부 없애겠다’고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 이런 곳에 돈을 쓴다면 재정투자 늘려도 상관 없다. 복지의 경우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능력있으면 교육받아서 일자리 얻는 것이 당연하다’는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복지 없는 성장’은 지속가능성이 없지만 ‘성장 없는 복지’ 역시 환상이다. 일자리 만든 기업을 적극 평가하고 지원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우리 국민은 담대한 개혁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보나.

올해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 수준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잘 살아보겠다’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 지 60년 되는 해다. 이 60년간 국민들이 땀 흘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로 오늘의 한국을 이룩했다. 2019년엔 30-50클럽(1인당 GDP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에 세계에서 7번째로 가입했다. 첨단산업도 예전에는 일본에만 의존했지만 지금은 일본을 앞지른 산업도 많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국민의 저력이고 활력이다. 방탄소년단(BTS) 등 세계적 자랑거리가 있지 않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 개방한다고 했을 때 ‘일본의 예속국’ 된다며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일본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다. 앞으로 10년 후 선진국으로서,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세계의 모범이 되고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인가는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고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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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최일권 경제부장, 정리= 주상돈 기자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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