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스 사이공' 킴 役 데뷔…한국인 최초 브로드웨이 주인공
'베르나르다 알바'에서 주인공 맡아 "알바는 외롭고 불쌍한 존재"
"낯설고 이질적인 음악, 무거운 극에 되레 청량함 더해줘"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여배우 10명만으로 채워진 무대. 여배우들의 매력이 돋보이는 정열과 관능의 춤 플라멩코. 가슴속 응어리를 씹었다 뱉어내는 듯 거칠고 직설적인 대사.


2018년 10~11월 초연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폭발적 화제와 함께 전 회차 공연 매진을 기록했다. '베르나르다 알바'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내년 1월22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와 함께 배우 이소정(47)도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다. 브로드웨이에서 주인공을 맡은 최초의 한국인. 이소정에게 영원히 허락된 훈장 같은 수식어다. 이소정은 1995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미스 사이공'의 '킴' 역을 맡으며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던 이소정은 2014년 '태양왕' 이후 뮤지컬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그동안 배우보다 가수 활동에 치중했다는 이소정을 지난 14일 정동극장에서 만났다. 6년 만에 출연하는 뮤지컬. 본능적인 끌림 같은 게 있었나보다.


"이 분야에 오래 있어서인지 포스터만 봐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 초연 포스터가 강렬했다. 포스터만으로도 공연의 완성도가 느껴졌다. 멋있는 공연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연이 결정됐을 때 신기했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베르나르다 알바 역으로 출연하는 이소정  [사진= 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베르나르다 알바 역으로 출연하는 이소정 [사진= 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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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은 주인공 '베르나르다 알바'와 하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폰시아' 역 오디션을 봤다. 최종적으로 '베르나르다 알바' 역에 캐스팅됐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서 다섯 딸을 키우는 과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1936년 완성한 희곡의 원래 제목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다. 로르카는 희곡을 완성하고 두 달 뒤 목숨을 잃었다. 희곡을 완성하고 바로 다음달 발발한 스페인 내전 때문이었다.


알바는 두 남편으로부터 다섯 딸을 낳았다. 극은 두 번째 남편이 이미 죽은 상황에서 시작된다. 알바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딸들에게 8년간의 애도 기간을 명하고 강력히 통제한다.


"알바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의 첫 대사는 '뭣들 하는거야?' '조용히 못해!' 이런 식이다. 이게 이 뮤지컬의 주제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자의 압제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며, 작은 사회가 어떻게 붕괴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알바도 봉건적 인습의 희생양이다. 극 중 알바가 부르는 넘버 '베르나르다의 기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소정이 가장 좋아하는 넘버이기도 하다.


'베르나르다의 기도'는 '성모 마리아 절 용서하소서'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절정에서 알바는 죽은 남편 안토니오를 부르짖으며 '나는 너의 창녀'라고 절규한다. 안토니오가 아내인 자기를 창녀 대하듯 폭력적으로 대했다는 분노다. 그런 알바가 다시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딸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극은 사회구조가 개인에게 폭력을 강요하는 게 아닌지 묻는다.


이소정은 알바에 대해 "지금 80세가 넘은 우리 엄마, 할머니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알바를 연기하면서 알바가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알바가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하지만 그 시대에 그런 삶을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쌍하다."


알바가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딸들은 더 벗어나려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딸들은 모두 알바와 거리를 둔다. 가지려 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 "알바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불쌍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굉장히 외로운 인물이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베르나르다 알바 역으로 출연하는 이소정  [사진= 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 베르나르다 알바 역으로 출연하는 이소정 [사진= 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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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세계적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이소정의 삶은 되레 극 중 딸들의 삶에 가깝지 않았을까. 이소정은 딸들의 심정이 완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 독립적으로 키우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뮤지컬 배우를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 하려면 무대가 무덤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라'라고 하셨다."


춤은 억압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딸들이 갖고 있는 욕망, 자유에 대한 갈망이 춤으로 표현된다." 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두 달 정도 플라멩코 사전 연습을 한다.


이소정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가장 큰 매력이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의 이질감에서 오는 쾌감'이라고 표현했다.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정형화된 브로드웨이나 유럽 뮤지컬 음악들이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는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없다.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베르나르다의 기도'의 경우 첫 부분이 관객을 좀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에서 오는 묘한 강렬함이 있다.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런 음악으로도 뮤지컬을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극은 무겁고 어두운데 음악의 참신한 이질감이 극에 청량함을 준다. 평이하고 익숙한 음악 대신 선택된 신선한 음악이 원작의 무게감을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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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은 2013년 '아이 러브 어 피아노(I Love A Piano)' 앨범을 내면서 배우보다 가수 활동에 치중해왔다고 말했다. 뮤지컬을 하지 않는 지난 6년 동안에도 재즈 콘서트 등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했다. 그는 앞으로는 뮤지컬 무대에도 많이 서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더 들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드니까 할 수 있는 한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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