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오마하의 현인'도 바이러스는 못 버텼다
[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예상하기 어려운 바이러스의 공격은 가치주에 장기 투자한다는 그의 투자 원칙까지 바꿨다.
버핏은 지난 2일(현지시간) 개최한 버크셔해서웨이 화상 주주총회에서 보유 중인 항공사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고 밝혀 주주들은 물론 주식 투자자들까지 놀라게 했다. "향후 2~3년간 항공업 수요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그의 발언은 4월 반등으로 다소 안이해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경고가 됐다.
버핏의 경고는 증시에서 확인됐다. 지난 4일 뉴욕증시에서 델타항공 주가는 6.4% 하락한 데 이어 5일에도 3.8%나 추락하며 강세인 시장과 반대로 움직였다. 유나이티드, 아메리칸항공 등 버핏의 포트폴리오에서 삭제된 항공사들 역시 주가 하락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미국 대표 항공기 제작사 보잉 주가도 약세를 보이며 다우지수30산업평균 지수의 상승을 깎아먹고 있다. 4일에는 항공기 엔진 제작사 GE가 1만3000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버핏의 이런 결정은 자신의 오랜 투자 격언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만 해도 항공사 주식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는 코로나19로 항공사 피해가 본격화하던 지난 2월 말 델타항공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며 가치 투자를 거론했다. 버핏은 3월에도 항공주를 매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추가 손실을 막기 위해 손절매를 택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내가 가치 판단을 잘 못한 것 같다"고 시인했다.
버핏이 투자를 시작한 이후 이같이 급격하게 변심한 예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오일 쇼크, 미 저축은행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위기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주식 투자로 자산을 불려왔다. 하지만 '현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에게도 바이러스의 공격은 예상 밖의 '미지의 세계'인 셈이다.
그가 주가 급락기에 아무런 주식도 사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 또한 이목을 끌고 있다. 막대한 현금을 들고서도 그는 살 만한 주식이 없다고 했다. 시장이 반등을 시도하는데도 투자의 대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 손실을 회복하기 위한 추격 매수는 없었다.
이에 대해 펀드평가업체 모닝스타의 그레그 워런 투자전략가는 "버핏의 역사상 이런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며 그가 달라졌다고 평했다. 버크셔해서웨이의 본업인 보험업처럼 위기에 대비했다는 해석이다. CNBC 방송의 유명 진행자 짐 크레이머는 "버핏의 발언은 인덱스 펀드 투자자들의 잠을 깨울 정도였다"고 평했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의 우드스톡'이라고 불리던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총도 완전히 바꿔놨다. 5월 초에 열리는 이 회사의 주총은 매년 버핏의 투자 격언을 듣기 위해 전 세계 투자자들이 쇄도하는 자리다. 약 4만명에 이르는 주주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다. 주총이 열릴 때면 미 중부 시골 도시 오마하는 3일 동안 잔칫집으로 변한다. 조금이라도 더 앞에 앉아 버핏의 발언을 경청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버핏의 변심은 오마하의 풍경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주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WSJ는 오마하 현지 언론을 인용해 오프라인 주총 취소로 오마하시가 입은 경제적 피해가 213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내년 주총 역시 정상적으로 열릴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내년에도 버핏을 화상으로 만나야 할 수 있다. 대규모 손실 발생과 투자 철학을 뒤집은 사실 외에도 이번 주총이 버핏과 버크셔해서웨이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버핏의 철학에서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 평소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등 자본주의의 불평등 해소에 노력해온 버핏은 이번 주총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미국이 지향해야 할 그림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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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미디언 빌 머레이는 버핏에게 '우리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 슈퍼마켓 종사자, 택배 기사 등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참전한 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냐'고 질문했다. 버핏은 "그들은 쉴 틈도 없이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위기가 극복되면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평범하거나 운이 좋거나 채권 등을 조절할 줄 아는 이들보다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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